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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소셜벤처의 등장과 의미 Ι 도현명 임팩트스퀘어 대표

by 임팩트얼라이언스 2023. 1. 10.

 해당 글은 한국사회적경제진흥원 [사회적경제 정책포커스] 2022년 Vol.5 "웰컴, 소셜벤처"에 게재된 글의 일부입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홈페이지 사회적경제 정책자료를 참고해주세요.
[출처]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정책연구본부 정책지원팀)


 지난 7월 중소벤처기업부는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개정해 소셜벤처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생태계에서는 이 근거 마련에 대해 소셜벤처도 기존의 다른 인증체계처럼 돼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기존에 다소 소외됐던 소셜벤처의 지원기반이 튼튼해지는 중요한 변화라는 입장이 많았다. 아무래도 국내는 아직까지 소셜벤처에 대한 지원이 정부의 정책적인 방향성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법적 근거 마련이라 함은 거꾸로 그간 소셜벤처에 대한 법적 근거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실제로 정부의 관점 외에 생태계 내 소셜벤처 개념에 대한 혼란은 여전히 존재하는 상황이다. 물론 소셜벤처가 무엇인지에 대해 지역/사회/시대마다 다르게 정의될 수 있고, 법적인 접근 외에는 그렇게 명료해야 하는 이유도 없다. 그럼에도 소셜벤처 개념이 사회적 기업이라는 개념과 동시에 사용되는 의도와 이유가 있다는 점에서 이 개념이 등장하게 된 과정이나 까닭을 이해해볼 가치가 있다.

 벤처의 연원을 따지자면 대항해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경우도 있지만, 현대적 의미의 벤처는 대체로 벤처캐피탈이라는 전문 투자자와의 연결성 안에서 정의된다. 제2차 세계대전의 불확실성 속에서 이 활동은 미국을 중심으로 시도되기 시작했다고 하며 1960~70년대에 비로소 현재와 유사한 구조의 벤처와 벤처캐피탈이 자리 잡았다. 이들의 핵심적 속성은 큰 불확실성 속에서 기업가정신을 중심으로 한 도전과 그에 대한 투자다. 이후 법이 생기고 좀 더 나은 방법이 무엇인지 학습되며 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지금의 모습이 만들어졌다.

 사회적 기업이라는 개념도 이와 유사한 시기인 1970년대에 영국을 중심으로 새로운 종류의 조직이 대안적으로 탄생하는 것을 명명하며 사용되기 시작했다. 기존 기업이 가진 속성과 다르게 특정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 그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미션을 가지며 활동한다는데 차이를 보였기 때문에 새롭게 사회적 기업이라는 그룹으로 묶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서도 특히 취약계층의 자립을 위해 활동하던 개인이나 비영리조직에 의해 지속가능한 고용이나 훈련을 위한 사업체들이 발족됐으며, 이들을 사회적 기업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렇듯 새로운 개념은 늘 당시에 새롭게 나타난 현상을 기존의 것들과 구분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다. 그렇다면 이런 흐름에서 소셜벤처는 언제쯤 왜 나타났을까? 여러 해석이 있지만 크게 두 가지 논의가 주를 이룬다. 하나는 사회적 기업의 창업기업을 의미한다는 표현이다. 사회적 기업의 영문 표현은 소셜엔터프라이즈다. 여기서 엔터프라이즈는 보통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기업체를 의미하는데 막 시작한 초기창업기업으로서 사회적 기업을 지칭할 필요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들을 모아서 지원하고 더 많이 생기도록 촉진하기 위한 필요는 소셜벤처라는 구분된 개념을 만들 었다. 다른 하나는 벤처의 연원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좀 더 위험하고 도전적인 과업을 불확실성 속에서 수행하며, 이를 통해 훨씬 더 규모 있는 사업을 만들려는 특성을 규정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실제로 사회적 기업의 본질이 반드시 대규모 조직일 필요는 없다. 특정 지역에서 자신이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한 소수의 인원에게 좋은 가치를 제공하더라도 괜찮은 사회적 기업이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기업 컨퍼런스에서는 종종 어떻게 우리의 사업을 모델로 만들어 다른 조직에서 복제 하고 확산할 수 있게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등장한다. 궁극적인 목적이 사회적 가치 창출에 있다 보니 우리 조직이 커지는 것보다 각 지역의 성격과 상황에 맞게 모델이 도입되는 경우를 우호적으 로 바라보는 특성이 있다. 그런데 어떤 사회문제는 대규모 투자를 통해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거나, 규모가 있는 해결책을 가지고 시장의 규범이나 작동 매커니즘을 바꿔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혁신적인 도전을 통한 대규모 사업이 요구된다. 그래서 벤처라는 성격이 강한 사회적 기업, 즉 소셜벤처가 필요해진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소셜벤처 개념을 확산하는데 크게 기여한 하나의 대회가 있다. 1999년 UC버클리 경영전문 대학원인 하스스쿨이 주도해서 만든 글로벌소셜벤처컴퍼티션(GSVC, Global Social Venture Competition)인데 전 세계의 대학 또는 단체와 협업으로 운영됐다(해당 대회는 수년전 20년의 역사를 끝으로 폐지됐음). 말 그대로 소셜벤처 대회가 운영되면서 스스로를 소셜벤처로 정의하는 조직의 참여와 인식 확산에 기여했다. 해당 대회의 심사 기준을 보면 앞서 언급한 초기단계의 사회적 기업이라는 인식과 함께 규모화에 대한 가능성을 모두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GSVC South East Asia 2018 포스터

 물론 세계적으로 소셜엔터프라이즈와 소셜벤처를 완전히 구분하려는 시도는 많지 않다. 정부의 법적인 지원이나 접근이 많지 않기 때문에 민간의 자율에 맡겨진 상태로 그때그때의 맥락에 맞게 적절하게 활용되고 해석되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임팩트 스타트업과 같이 또 다시 분화되거나 특정 부분을 강조하는 용어들도 생기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혼용에는 문제가 없다.

 예를 들어 미국의 대표 소셜벤처로, 앞서 언급한 글로벌소셜벤처컴퍼티션에서 수상하기도 했던 레볼루션푸드(Revloution Foods)를 살펴보자. 전직 선생님이었던 두 창업자가 공립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식습관 개선과 건강한 식사 제공을 위해 만든 소셜벤처다. 이 소셜벤처는 초기부터 수차례 임팩트 투자를 받으며 성장했다. 어떻게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건강한 식사를 제공할지, 어떻게 아이들이 건강한 식사에 친근하게 만들지 두 가지 문제를 풀어내며 2006년 설립된 이래 4억7천만 식사를 23개주 564개 도시에서 제공했다.

레볼루션푸드 Ι 출처 : 레볼루션푸드 홈페이지(http://www.revolutionfoods.com/kids/)

 반면 국내에는 2007년 사회적 기업에 인증 제도를 도입하면서 ‘사회적기업’은 ‘사회적 기업’이라는 일반 개념과 구분되는 하나의 고유명사가 됐을 정도로 명료한 제도적 정의가 있다. 이 시기 이전에는 국내에 사회적 기업이라는 용어가 통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표적인 사회적 기업 관련 초기 번역서인 「세상을 바꾸는 대안기업가 80인」에 사회적 기업이 아닌 대안기업으로 표현돼 있기도 하다. 그리고 이 당시에는 이미 세계적으로 소셜엔터프라이즈와 소셜벤처가 혼용되고 있는 상태였으며, 국내에는 2007년 「사회적기업 육성법」이 제정되기 이전인 2006년에 ‘한국소셜벤처대회’가 처음 열리기도 했다. 처음 생길 때는 해외 트렌드와 마찬가지로 혼용되는 상황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후 「사회 적기업 육성법」에 의해 인증 사회적기업에 대한 본격적인 홍보 및 확산이 시작되면서 소셜벤처 개념은 대회 외에는 찾아보기 어려운 몇 년이 지나가게 된다.

 그러나 젊은 청년들을 중심으로 소셜벤처라는 용어는 지속적으로 생태계에서 사용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는 앞서 소셜벤처가 분화된 해외 이유와 마찬가지로 초기단계라는 점과 벤처라는 위험 감수의 속성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더해 기존의 인증 사회적기업의 초기 정책이 취약 계층 고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고 정부의 일자리 지원에 따른 안정성을 기반으로 확산됐다면, 그보다 좀 더 기술을 활용해 일자리 외의 문제에도 다양하게 접근하길 원하던 청년들은 기존의 강력한 기조와 다른 스스로의 위치를 인식하고 싶었던 것이다. 한편 인증제도에 대한 반발심도 한 몫 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있다. 국내에서 사회적기업 인증을 취득하지 않은 조직은 스스로를 사회적기업으로 부를 수 없다. 물론 사회적 기업이라는 일반 명사로 사용하면 된다지만 대내외적으로 보다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는 개념으로서 소셜벤처 또는 임팩트 스타트업이 선택된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던 중 2017년 겨울에 ‘서울숲 소셜벤처 클러스터’라는 성수동의 민간 소셜벤처들이 모여 만든 지역에 대통령이 방문해 소셜벤처를 지원하고 임팩트 펀드를 조성하겠다는 정책이 발표된다. 그렇게 2018년 5월, 소셜벤처와 관련된 구체적이고 본격적인 지원이 처음 시작됐다. 이때도 역시 소셜벤처는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었으나 중소벤처기업부가 주무부처로 설정돼 기존의 벤처를 진흥 하던 시스템에 소셜벤처라는 특수한 유형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지원은 하나둘 늘어났다. 특히 괄목할 만한 변화는 임팩트 펀드, 즉 사회적 가치를 가진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가 정책적 지원으로 빠르게 늘어났다는 점이다. 투자는 당연히 향후 성장성을 기본으로 검토되는 것인데, 이는 위험을 감수하고 성장하려는 소셜벤처의 특성에 가장 적합한 배후 생태계다. 실제로 약 3년반 동안 7,000억원이 넘는 임팩트 투자가 공급되면서 빠르게 성장하는 소셜벤처가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기술보증기금에 따르면 소셜벤처는 사회적기업가 정신을 지닌 기업가가 기존과는 다른 혁신적인 기술이나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동시에 창출하는 기업 으로 정의하고 있다. 또한 소셜벤처 요청에 따라 인증제도가 아닌 판별기준을 마련해 해당 기준에 적합 한 조직은 모두 소셜벤처로 등록할 수 있게 됐다. 핵심 기준은 사회적 가치와 혁신성으로 구성돼 있다. 현장에서는 이런 판별기준이나 법적 근거 등이 또 다시 소셜벤처를 정책의 틀에 한정시켜 민간의 자유로운 성장과 확산을 제약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지만, 대체로 정책적인 지원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필요한 부분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이렇듯 국내에서 소셜벤처는 앞서 언급한 역사적이고 자연스러운 이유 외에도 정책적인 흐름이 미친 영향이 많다. 사회적 기업은 고용노동부 주관으로, 소셜벤처는 중소벤처기업부 주관으로 진행된 특성이 있다. 또한 초기 사회적기업이 취약계층 일자리에 문제의식을 가진 활동가들이 주요 구성원 으로 시작된 반면, 소셜벤처는 해외 사례와 대회를 통해 이를 이해하게 된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가 그 시작점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전자는 영국이나 유럽의 사회적경제가 주요한 벤치마크였고, 후자는 미국의 소셜벤처가 중요한 학습 사례가 됐다. 이런 차이는 한국만의 독특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임팩트 펀드가 대규모로 공급되면서 이에 적합한 구조를 가진 조직들이 다수 소셜 벤처 그룹에 소속돼 있어 많은 혜택을 봤으며, 임팩트 펀드 운용사들도 대다수가 소셜벤처 그룹에 있는 생태계 조직들로부터 나오며 생태계의 특성이 기존의 사회적경제 생태계와 좀 더 구분되는 경향이 생겼다.

 소셜벤처의 등장과 현재 겪고 있는 상황은 물론 하나의 현상이지만 그것이 함의하는 몇 가지 의미가 있다. 먼저 다시 한번 되짚어야 하는 점은 본질을 다시 사회적 기업가 정신에 둬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좋은 창업은 어려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창업가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시작된다. 일반 창업인 페이 스북, 에어비앤비 등이 그러한 각자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사회적 기업과 소셜벤처도 마찬 가지다. 단지 스스로의 호구지책으로 만들어지는 조직이 아니라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문제에 가장 적합한 도구로 기업을 창업하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레볼루션푸드나 키바 같은 전설적인 소셜벤처가 모두 그랬다. 우리는 개념의 끝부분이 갈라지는 특화에 집중하기 이전에 다시 본질은 사회적 기업가 정신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두 번째로는 소셜벤처 생태계의 급격한 성장에 따른 임팩트 워싱에 대한 고민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임팩트 투자자 네트워크인 글로벌 임팩트인베스팅 네트워크(GIIN, Global Impact Investing Network)에서 매년 발표하고 있는 조사에 따르면 5년 이내 도래할 가장 큰 문제는 늘 임팩트 워싱 이다. 돈이 들어오고 성장이 빨라지면서 그 규모가 크게 확대되고 나니 점점 더 가짜가 많이 생기고 있는 것은 국내나 해외나 매한가지인 것이다.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개별 조직 단위는 물론이고 생태계 전체 차원에서도 사회적 기업 또는 소셜벤처의 정체성은 크게 약해질 수밖에 없다. 임팩트 워싱의 가장 기본적인 해결책은 사회적 가치를 올바르게 측정하고 공표할 수 있는 문화가 사회에 자리 잡는 것이다. 그래도 사회적기업은 인증이라는 제도를 통한 검증 과정이 있다. 하지만 소셜벤 처는 판별제도의 어쩔 수 없는 허점을 노린 임팩트 워싱이 늘어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보다 건강한 소셜벤처 생태계를 위해서는 사회적 가치 측정에 대한 노력도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

 필자에게는 여전히 “사회적 기업이에요? 소셜벤처에요?”라는 질문이 어색하다. 그러한 구분이 정책적 목적 외에는 도대체 왜 필요한지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핵심은 이 두 가지 개념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가 소셜벤처라는 구분을 원했다는 흐름만 이해하면 된다. 그리고 언젠가 필요성을 잃는다면 잊히고 통합되는 것이 맞다. 소셜벤처건 사회적 기업이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그 자체가 절대적인 선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정의와 개념은 사후적 으로 이해와 적용을 위한 노력일 뿐이다. 늘 개념은 사회의 필요에 따라 생기고 없어지며 진화해야 한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두 가지 조직이 모두 필요하고, 또 완전히 다른 어떤 조직의 필요도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다.

 그간 우리나라의 사회적경제건 소셜벤처건 모든 생태계는 정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장점도 많았지만 개념 정의의 측면에서는 잃은 것도 많다. 사회적경제와 소셜벤처 생태계가 충분히 성장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본의에 집중하는 한편, 그 개념이 어디로 진화해나갈 것인지는 이제 생태계가 스스로 정의하고 만들어 가도록 둬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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