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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액션세미나 : 'AI기본사회'가 여는 사회적 일자리 방향 (26년 4월)

by 임팩트얼라이언스 2026. 4. 24.

새로운 사회적 일자리가 필요하다

지난 4월 23일, 유디임팩트와 임팩트얼라이언스가 함께 연 액션세미나 「'AI 기본사회'가 여는 사회적 일자리의 방향」의 주제 질문은 하나였다. AI가 일자리를 대체하는 건 이미 기정사실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창출할 것인가. 이 자리에 광주연구원 한경록 박사, 유디임팩트 박중수 CPO, 에이아이웍스 이혜민 큐레이터, 임팩트얼라이언스 박정웅 팀장이 연사로 섰다.

액션세미나는 언더독스가 기업 사회공헌·상생협력 담당자를 대상으로 운영해 온 정책·실무 세미나 시리즈다. '액션(Action)'이라는 이름에서 드러나듯, 거시 담론에 머무르지 않고 기업 실무자가 바로 적용할 수 있는 파트너십 모델과 프로그램 설계 아이디어를 남기는 것이 기획 의도다. 이번 회차는 임팩트얼라이언스와 함께 기획했다. 정책 기획자, 자원 제공자, 현장 실행 조직을 한자리에 앉히는 구성이 이 협업에서 더 선명해졌다. 실제로 마지막 순서에는 연사들이 청중에게 "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해 볼 수 있는 한 문장"을 남기기도 했는데, 그 한 문장이 무엇이었는지는 글 말미에 옮긴다.

우리에게 이미 적혀 있던 말: 소외 없이, 배제 없이, 차별 없이

한경록 박사의 발제는 "이 이슈가 갑자기 등장한 게 아니다"라는 한 장면에서 출발했다. 2019년 문재인 정부의 인공지능 국가전략 문서에 이미 "사람 중심", "포용적 일자리 안전망" 같은 표현이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올해 이재명 정부가 띄우는 "모두의 AI"도 이 흐름의 연장선이고, 2026년 상반기 중 발표될 'AI 대응 일자리 정책 로드맵'과 '산업전환 고용안정 기본계획'의 골자 역시 포용적 고용안전망과 사회적 보호 강화다. AI 기본법, 디지털포용법, 산업디지털전환촉진법도 올해 안으로 정비가 진행된다. 담론은 이미 7년째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그 담론이 현장에서 실행 모델로 옮겨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 박사가 발제 중간에 꺼낸 알파고 10주년 에피소드는 이 시차를 압축적으로 보여줬다. 2016년 이세돌 대 알파고가 대결 구도였다면, 2026년 10주년 이벤트에서 이세돌은 AI 스타트업이 만든 솔루션에 본인의 기보 경험을 학습시켜 모델을 직접 만들고, 그 모델과 대국을 두었다. 10분 만에 졌다. 여기서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라 제작 시간이다. 한 박사 표현을 옮기면, 예전 알파고는 "어마어마한 과학자들이 많은 시간과 자본을 투자해서" 만들었지만, 지금은 20분이면 준하는 성능의 모델을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그가 AX를 한 문장으로 정리한 표현은 이렇다. 예전엔 사람이 기계어를 배웠지만, 지금은 기계가 인간 언어를 배운다.

이 흐름이 한국의 일자리 시장에 닿았을 때 나타나는 첫 현상은 초급 개발자와 정형 업무 직군의 축소다. 생성형 AI가 단순 코딩 수준의 업무를 지원하면서 청년 신규 고용이 어려워지고, 임금 격차까지 벌어진다. AI 노출도가 높으면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기존 통념과 달리, 최근 논문들은 노출도 높은 직군에서 오히려 고용이 증가하는 역설적 결과를 내놓는다. 다만 청년 쪽이 아니라 시니어 쪽에서다. 한 박사는 그 이유를 시니어가 가진 암묵적 지식과 고차원의 복잡한 의사결정 체계 속에서 역할이 드러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 박사가 광주 시민 600명을 대상으로 직접 진행한 설문에서 76% 이상이 "AI가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고 답했고, 가장 우려되는 변화로 일자리 감소와 실업을 꼽았다. 한국 사회가 이 흐름을 얼마나 가깝게 체감하는지를 보여주는 숫자다.

발제의 중간쯤 한 박사가 던진 재정의. AI의 핵심은 대체가 아니라 "낮은 부가가치의 일자리를 높은 부가가치로 옮겨주는 힘"이라는 것이다. 이 재정의는 실무적으로도 중요하다. AI는 문제를 푸는 건 잘하지만 "무슨 문제를 풀지"는 여전히 사람이 프롬프트로 준다. 그러니 AI를 덜 쓰면서 스스로 생각하고 문제를 발굴하려는 사람을 조직이 어떻게 평가하고 어떤 직무로 재설계할 것이냐가 앞으로의 숙제다. 한 박사는 이 사람들을 기획 직무 쪽으로 옮겨 새 문제를 계속 찾게 하는 것이 맞는 방향이라고 봤다. 이 지점에서 AI 시대의 인재상이 이어진다. 공감, 창의, 윤리, 소통. 여기서 창의는 "문제를 창의적으로 푸는" 쪽이 아니라 "질문 자체를 창의적으로 만드는" 쪽이라고 그는 분명히 선을 그었다.

그렇다면 포용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가. 한 박사는 구체적인 숫자 하나를 제시했다. 광주 시민 설문에서 생성형 AI 서비스 월 구독료에 대해 66%가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다. 많이 쓰는 사람은 월 10만 원을 지불하고, 2만 원도 쉽지 않은 계층이 공존한다. 디지털 취약계층의 법적 정의에는 저소득층, 고령자, 농어업민, 장애인, 북한이탈주민, 다문화가 들어간다. 이들에게 바우처나 공공 지원이 닿지 않으면 AI 격차는 기존 이중구조 위에 또 한 층의 격차로 쌓인다. 한 박사는 발제 말미에 본인이 생각하는 용어를 하나 제안했다. 효율과 생산성 한 축, 윤리와 사회적 책임 한 축을 동시에 가져가는 AI를 "임팩트 AI"라고 부르자는 것이다. 그가 그린 AI 일상 도시는 포용, 협업·활용 인재, 윤리, 보안의 네 축이 맞물려야 돌아간다. 이 중 어느 하나가 빠지면 나머지 셋도 흔들린다. 

부족했던 건 아이디어가 아니라, 실행력 있는 동료였다

박중수 CPO는 원래 개발자였고, 지금은 유디임팩트에서 CPO를 맡으면서 자회사 F-Lab에서 AI 교육 비즈니스를 운영한다. 이 배경이 중요한 이유는 그의 발제가 "팀원이 공부하지 않게 하는 책임은 회사가 진다"라는 원칙 위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박 CPO의 진단은 이렇다. 작년부터 좋은 AI 툴이 쏟아져 나왔지만 정작 회사가 AX를 못 하는 이유는 툴이 너무 많아서다. 새로 나오는 툴을 따라 공부하고 도입을 반복하다 보면 정작 본업에 집중할 수 없게 된다. 리더뿐 아니라 팀원도 같은 인지 부하에 휩싸이고, 그러니 AX의 속도가 안 난다. 박 CPO가 세운 기준은 한 문장으로 정리된다. "AX를 성공적으로 하려면 난이도가 압도적으로 낮아야 한다." 

그래서 유디임팩트는 어려운 구축을 중앙 전문가 집단이 회사 환경 차원에서 해결하고, 팀원은 슬랙 메신저로 일만 시키면 되는 구조를 만들었다. 검색, 문서화, 커뮤니케이션, 히스토리 관리처럼 인지 부하는 크지 않지만 반복되는 업무가 대상이다. 메신저 스레드에 "이런 대시보드 만들어줘", "페이스북 광고 이미지 만들어 9시에 퍼포먼스 리포트 해줘"라고 적으면 에이전트가 실행하고 주기적으로 보고한다. 2~3년 전 슬랙 대화도 에이전트가 검색해 가져온다. 두 달 동안 한 채널에서만 AI와 주고받은 메시지가 3,000건에 달한다. 박 CPO가 이 사용량이 나온 이유로 든 한 가지는 단순했다. "정말로 쉬워서"다. 중앙 전문가 집단이 책임지는 또 하나의 영역이 보안이다. 에이전트가 선택할 수 있는 도구 자체를 권한 수준에서 차단해, 개인정보가 허용되지 않은 창구로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시스템적으로 막았다. 팀원 개인의 판단에 맡기지 않는다는 게 핵심이다.

이 구조를 박 CPO는 2026년 중 청년마을 22개소에 단계적으로 적용할 계획이다. 여기서 그의 발제가 사내 AX 이야기에서 지역 맥락으로 넘어간다. 지방 창업가가 겪는 가장 큰 애로는 자원 부족이다. 수도권과 달리 개발자, 디자이너, 마케터를 동료로 얻기 어렵다. 기회가 보여도 실행이 안 되니 결국 수도권으로 떠나고, 지역 소멸의 악순환이 이어진다. 박 CPO의 재정의는 이 지점에서 나왔다. 지역 청년에게 부족했던 건 아이디어가 아니라 "부족한 리소스를 채워줄 수 있는 실행력 있는 동료"였고, 이 빈자리를 AI가 채우고 있다는 것이다. 수도권 창업가에게 AX가 기존 업무 효율화라면, 지방 창업가에게 AX는 존재하지 않던 자원을 얻는 일이다. 실제 사례도 같이 제시됐다. 비개발자가 직접 만든 KPI 트래킹 대시보드, 지원사업 공고를 먼저 검색해 "이런 게 있으니 지원해봐"라고 띄워주는 에이전트, 카드뉴스를 만들어 SNS에 업로드하고 유료 광고까지 집행하는 자동화. 이미 굴러가고 있는 사례들이라는 말이 중요했다.

박 CPO가 패널토크에서 덧붙인 관점은 "AI를 잘 쓴다"는 게 대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보기 좋은 긴 답변을 뽑거나 토큰을 많이 쓰는 사람이 잘하는 게 아니라, 적은 자원으로 많은 아웃컴을 내는 사람이 잘하는 것이라는 재정의다. 가령 유디임팩트는 에이전트의 내부 컨텍스트 파일을 영어로 작성하고 입출력만 한국어로 처리하는 방식으로 토큰을 줄이고 있다고 했다. AI를 도입하는 일은 결국 "더 많이 쓰는 법"이 아니라 "같은 결과를 더 적은 자원으로 내는 법"을 설계하는 일이라는 걸, 박 CPO는 담담하게 짚고 지나갔다.

누구나 고용취약계층이 될 수 있는 시대

이혜민 큐레이터가 에이아이웍스를 만난 계기부터 옮기는 게 이 발제의 맥락을 가장 빠르게 전달한다. 그는 2007년부터 미술 전시 큐레이터로 일했고, 쌍둥이를 키우며 프랑스 유학까지 다녀온 커리어를 쌓아왔다. 팬데믹은 이 사이클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렸다. 미술관의 모든 전시가 문을 닫았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했다. "내가 정말 이렇게 커리어가 끝나는 것인가" 하던 시기에 본인이 살던 서초구에서 당시 테스트웍스(현 에이아이웍스)의 AI 교육을 만났다. 2021년 위촉직 강사로 합류했고, 만 5년 만에 교육사업팀 리드가 되었다. 발제 중반에 이혜민 큐레이터가 "고용취약계층의 정의가 바뀐다"고 말할 때 그 주장의 무게는 여기서 나왔다. 본인이 바로 경력 보유 여성으로서 AX 전환을 통해 재기한 사례였기 때문이다.

에이아이웍스는 AI 데이터 구축과 소프트웨어 테스팅에서 시작해 최근에는 에이전트 AI까지 확장했고, 자회사 테스트웍스는 장애인 표준사업장으로 운영된다. 160~170명 규모 조직에서 발달장애인, 자폐성장애인, 청각장애인 등 총 16명이 상시 고용돼 있다. 회사 규모의 약 10%다. 시작은 경력 보유 여성(과거 용어로 경력 단절 여성) 고용이었고, 지난 11년 동안 취약계층 고용 모델을 이어왔다. 그런데 생성형 AI의 등장이 이 모델 자체를 흔들기 시작했다. 발달장애인과 자폐성장애인이 잘 수행해 온 AI 데이터 구축과 검수 업무, 즉 반복 업무가 바로 AI가 가장 먼저 대체하는 영역이 됐기 때문이다. 이혜민 큐레이터가 발제 중반에 담담하게 내놓은 문장이 있다. "자폐성장애인이나 발달장애인들이 굉장히 잘할 수 있었던 직무를, 이제는 더 이상 인공지능이 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시대가 된 겁니다."

여기서 취약계층의 정의가 확장된다는 이혜민 큐레이터의 주장이 이어진다. 장애인, 시니어, 경력 보유 여성 같이 기존의 정의에 포함되던 집단뿐 아니라, "사회적인 구조 변화에 편승하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나 고용취약계층이 될 수 있는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팬데믹 때 그가 겪었던 일이 AX 전환기에는 훨씬 넓은 집단에게 일어날 수 있다는 진단이다. 그러니 AX 전환 교육도 대상별 특성에 맞는 방식으로 각각 설계되어야 한다는 말로 이어진다.

에이아이웍스가 선택한 전략은 고부가가치 직무로의 지속 가능한 전환이었다. 그 실험의 첫 번째가 2023년 상반기 경기도 AI 창작단 시범사업이다. 경기도 내 발달장애인 15명이 생성형 AI를 활용해 창작 작업을 했다. 한 참여자의 프롬프트는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바닥 위에서 아이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이었다. 또 한 분의 프롬프트는 "꽃이 핀 코끼리"와 "꽃이 핀 사슴"이었다. 이혜민 큐레이터의 해석이 흥미로웠다. 비장애인이라면 잘 쓰지 않을 이런 언어 조합을 생성형 AI는 오히려 창의적으로 재구성해서 이미지로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장애인 개개인의 언어적 특성이 프롬프트가 되었을 때 가장 몰입을 이끄는 결과물이 나왔다는 설명은 AX 시대의 자산이 무엇인지에 대한 기존 전제를 뒤집었다. 작년에는 서초구 양성평등 기금 사업으로 이 작업을 한 단계 더 밀고 나갔다. 지역 경력 보유 여성을 AI 예술 교육 보조강사로 양성하고, 서초발달장애평생교육센터와 MOU를 맺어 발달장애인과 창작 작업을 함께하고, 방배아트유스센터의 청소년 전시 기획자 양성까지 묶었다. 장애, 비장애, 청년, 청소년, 경력 보유 여성이 한 전시에 모이는 포용적 구조가 그려진 것이다. 올해는 이 경험을 기반으로 강원도 10개 시군구 장애인 대상 디자인 교육과 굿즈 제작·판매 연계 사업을 준비 중이다.

진짜 사라지는 건 "10년 뒤의 리더"

임팩트얼라이언스 박정웅 팀장의 출발점은 담론의 층위를 한 단계 올리자는 제안이었다. "일자리"라는 틀에 갇히면 결국 취업률과 고용률로 이야기가 돌아간다. 시야를 전 지구로 넓히면 AI로 대체될지도 모른다는 일자리조차 애초에 접근하지 못하는 사람이 인류의 50%를 넘는다. AI 일자리 담론 자체가 선진국의, 그것도 지식노동자 중심의 논의라는 뜻이다. 그러니 질문을 바꿔야 한다. 일자리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진짜로 무너지고 있는 건 무엇인가. 박 팀장의 답은 리더 육성 구조였다. AI가 대체한 것은 초급 업무인데, 이것의 본질은 10년 뒤의 생태계 리더가 자라지 못하는 구조를 만든다는 것이다.

한국은행 리포트에 따르면 같은 기간 동안 청년 일자리 22만 개가 줄고, 50대 일자리는 거의 같은 숫자만큼 늘었다. 숫자만 보면 이동이지만, 이 이동은 동등한 교환이 아니다. 중장년과 시니어 일자리는 밸류업이 안 돼도 괜찮다. 사회공헌이거나 현상 유지의 성격도 충분하다. 그러나 청년 일자리는 2~3년 뒤에 본인 가치가 올라가는 직무여야 한다. 자산도 없고 결혼도 미뤄둔 상태에서 "플러스 1"이 아니라 밸류업 되는 경로가 보여야 다음 스텝이 선택 가능하기 때문이다. 쉬었음 청년 76만 명(20~30대 기준)은 이 경로가 사라진 결과다. 5명 중 1명이 일자리가 없다는 뜻이다. 리더십은 책만으로 길러지지 않는다. "이불킥하면서 실패해 보고, 상사 선배들 어깨 너머로 보면서, 팀장이 돼서 의욕에 차서 내렸던 의사결정이 오히려 멤버들에게 안 좋은 결정이었다는 걸 경험해 봐야 쌓인다." 10년 뒤 의사결정과 미래 비전을 맡을 사람들이 지금 어디서 길러지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 현재의 청년 채용 구조는 답을 내놓지 못한다.

박 팀장이 그다음에 꺼낸 프레임이 "프로듀싱"이었다. 한국의 경력 모델은 중진국 시절 NCS(직무)와 자격증 중심으로 설계됐는데, 지금의 선진국 사회에는 맞지 않는다. 비유는 K-POP이었다. 과거엔 끼만 가지고 아이돌이 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스킬셋, 마인드셋, 캐릭터를 전문가들이 붙어서 체계적으로 기획하고 설계한다. 경력에도 이런 프로듀싱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현재 정책은 교육과 일 경험 제공까지만 맡고 그 이후의 경력 설계는 개인 역량에 떠넘긴다. 경력을 비용(resource) 관점으로 보는 것이지 자본(capital) 관점으로 보는 게 아니다. 이 발상의 전환에서 박 팀장의 해법이 나온다. 정책은 지원 체계가 아니라 '시장'을 만들 수 있다. 무상급식이 식사 지원금이 아니라 급식 시장 자체를 만들어낸 것, 장애인고용분담금이 '브라보비버'와 같은 지분투자형 장애인 표준사업장이라는 새 법인 모델을 키워낸 것이 같은 원리다. 지원금은 한 번으로 끝나지만, 시장은 그 안에 중소기업을 만들고 사람을 고용시키고 소비를 지역에 뿌리는 구조로 순환한다.

출처: 발제자료, 임팩트얼라이언스 박정웅

해법은 세 축이었다. 금융, 사람, 방법론. 금융 쪽 핵심은 캐피탈 스택이다. 단일 지원금이 아니라 인내자본이 가장 밑에 깔리고, 그 위로 CSR 인건비, 임팩트 투자, 주류 금융이 차례로 올라가는 구조다. 미국의 경우 비영리재단은 가장 밑의 10% 자금으로 손실 리스크를 먼저 감당해주고, 그 위로 월가 금융까지 붙어 전체 90%를 움직인다. 여기에 고향사랑기부제를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비영리 프로젝트 지정 기부와 결합하면, 프로그램 운영비를 기부금으로 충당하고 바로 위에 쌓이는 CSR은 100% 인건비와 역량강화로 쓸 수 있다. 광주 동구 발달장애인 야구단이 기업 후원이 끊긴 상태에서 고향사랑기부제로 전국 우승까지 간 사례, 피스윈즈재팬의 피스완코 모델을 가져온 피스윈즈코리아의 유기견 안락사 제로 프로젝트가 이 구조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증거다. 이걸 담는 그릇이 지자체 출자와 민간 출자를 섞은 특수목적법인(SPC)이다. 성동미래일자리주식회사가 대표 사례다. 성동구 출자와 민간 출자로 만든 주식회사가 시니어에 특화된 일자리를 관 운영 시설이나 공공기관 카페 같은 데서 만들어낸다.

사람 축에서  꺼낸 재정의는 이렇다. AI 스킬은 점점 더 쉽게 상향 평준화될 것이고, 차별화는 데이터와 관계에서 온다. 검색되지 않는 현장의 데이터를 얼마나 가졌는지, 내가 나라는 걸 증명해줄 커뮤니티가 있는지가 남는다. 그러니 경력 설계 자체를 "내가 하는 일을 어떻게 데이터셋으로 만들 수 있느냐"로 바꿔야 한다. 발제 마지막, 박 팀장은 한 가지를 자백했다. 이날 발표 자료를 파워포인트와 워드, 인터넷 브라우저를 한 번도 열지 않고 클로드(채팅, 코워크)만으로 기획하고 조사하고 장표까지 뽑았다는 것이다. "유일하게 내가 만든 PPT가 이 한 장인데, 여기에만 오타가 있다. 나는 이제 AI보다 일을 못하는구나, 이걸 인정하게 됐다." 웃음이 섞인 자백이었지만 의도는 발제 전체의 논리를 담고 있었다. AI 주제로 발제하러 온 본인이 이미 AI로 일하는 방식을 재설계했다는 실증이었고, 이어서 원고 제출 다음 날 업데이트된 모델로 같은 자료를 다시 요약한 결과를 나란히 띄워 몇 달 단위로 판이 바뀐다는 것까지 보여줬다. 이 속도 안에서 청년의 첫 경력 경로를 설계하지 않으면 앞서 말한 리더 육성 구조는 복구 불가능한 단계에 들어간다. 경로는 담론이 아니라 실행이라는 마지막 메시지였다.

한 문장씩 남겼다

패널토크에서 박정웅 팀장의 답변 중 하나는 "(자신을 포함해) 중장년이 AI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다. 대신 후배들이 AI를 잘 쓸 수 있게 한 달 토큰 사용료를 결제해 주고, 그 친구들과 산책하고 커피 마실 시간을 확보하라는 제안이었다. AI가 의사결정과 실행의 병목을 줄여주면서 과거엔 기다림 속에 자연스럽게 생기던 관계 쌓기 시간이 증발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관계를 쌓을 수 있는 병목을 만드는 것이 미래적인 역량"이라는 말이었다. AI 전문가가 되려고 따라잡는 경쟁이 아니라, 다음세대가 AI로 더 멀리 갈 수 있게 트랙을 깔아주는 쪽으로 세대 역할을 다시 그리자는 제안이었다.

세미나 이름에 '액션'이 붙은 이유가 마지막 순서에서도 드러났다. 네 연사가 각자 청중이 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해 볼 수 있는 한 문장을 남기며 행사가 마무리되었다.

박정웅 팀장, "10년 뒤 리더가 될 만한 후배와 커피를 마셔라." 
이혜민 큐레이터, "그냥 해 보자, 포기하지 말자." 
박중수 CPO, "클로드 코워크를 사용해 보자." 
한경록 박사, "소외 없이, 배제 없이, 차별 없이, 모두가 누리는 AI 기본사회를 실현해야 한다."

남은 질문

이날 자리는 AI로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공포를 나누는 자리가 아니었고, AI로 어떻게 일자리가 늘어나는지 자랑하는 자리도 아니었다. 네 명의 연사는 각기 다른 각도에서 같은 지점을 가리켰다. 대체는 이미 일어나고 있고, 논의해야 할 것은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설계할 것인가"라는 것이다.

이 설계의 주체는 단일하지 않다. 공공은 정책이 시장을 만들 수 있도록 설계 단계부터 데이터를 쌓아야 하고, 기업과 재단은 인건비와 토큰 결제 같은 '작은 예산 변화'부터 집행 가능하게 바꿔야 하며, 현장 조직은 교육에서 끝내지 않고 일자리 연계까지 한 기금 안에 묶어 제안해야 한다. 청년은 직무 스킬이 아니라 데이터셋과 관계를 만드는 쪽으로 경력을 다시 짜야 하고, 중장년은 자신의 일자리를 지키는 방어가 아니라 후배에게 기회를 열어주는 프로듀싱 역할로 옮겨가야 한다.

설계는 결단이 아니라 작은 합의와 실행의 누적으로 완성된다. 이날 자리는 그 합의가 어떤 조합으로 맞춰질 수 있는지를 꺼내 본 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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