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응원의 전부가 아니라 한 방식이어야 한다"
SOVAC SALON 7월 밋업 <지역과 사회혁신: 로컬의 자본과 방법론> 현장 기록
지난 7월 22일 오후, SOVAC SALON 7월 밋업이 열렸다. 주제는 <지역과 사회혁신: 로컬의 자본과 방법론>. 어떻게 하면 사람이 지역에 오게 하고, 또 계속 머물러 살게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을 놓고 여섯 명의 발제자가 각자의 현장을 가지고 나왔다.

첫 발제를 맡은 SOVAC 사무국 김소선 매니저는 "자본이나 금융, 방법론은 결국에 리스크를 누가 어떻게 감당하느냐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질문이 준비 과정에서 생겼다고 했다. 지원금이든 융자든 투자든, 모든 수단은 리스크를 누가 부담할 것이냐가 먼저 정해져야 작동한다. 그리고 리스크를 지기로 한 주체가 무엇을 책임질 것인지가 합의되어야 금융이 성립한다.
그렇다면 로컬의 리스크는 어디서 오는가. 김 매니저는 로컬 경험이 많은 이들을 인터뷰하며 두 종류의 리스크를 구분하게 됐다고 했다. 시장이 형성되지 않았거나 규모가 작아서 발생하는 리스크가 하나, 잘 몰라서 리스크가 클 것이라고 판단하는 리스크가 다른 하나다. 로컬은 후자에 가깝다는 응답이 많았다. 이날 살롱의 여섯 발제는 결국 이 인지적 리스크를 각자의 방식으로 돌파해내고 있는 현장 보고였다.
"시장이 없어서가 아니라, 잘 몰라서 리스크가 크다고 여겨진다"
김소선 매니저는 로컬에 특화된 대안적 금융 방법론을 찾다가 장소 기반 투자(Place-Based Investing)에 도달했다고 했다. 로컬에서 사회혁신을 한다는 것은 그 지역에서 발생한 문제를 그 지역에서 풀어야 한다는 뜻이므로, 프로젝트가 물리적 장소에 결박될 수밖에 없다. 이 개념과 늘 함께 붙어 다니는 것이 자본 오케스트레이션(capital orchestration), 파편화된 투자에서 벗어나 하나의 문제를 향해 서로 다른 성격의 자금을 배열하는 방식이다.

대표 사례로 소개된 것이 필라델피아 모델의 KCT 프로젝트다. 펜타닐 등 마약성 진통제 문제로 오랫동안 투자에서 소외됐던 지역이 싼값에 매각되려는 움직임이 일자, 선주민이 강제 퇴거될 우려가 커졌다. 기존 주민과 소상공인은 투자가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하되 그것이 자신들을 몰아내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는 데 뜻을 모았다. 한 기업이나 한 주민이 지켜낼 수 없는 일이었기에, 지역이 우선적으로 풀고 싶은 문제에 동참하려는 개발사와 공공기관, 비영리, 소상공인이 각자의 자금을 모아 협의체를 만들었다. 그렇게 33개 부동산을 유치해 외부 자본으로의 무분별한 매각을 막았다. 마약 관련 문제는 현재도 진행 중이며, 논의는 지역 문화와 교육 영역으로 확장을 준비하고 있다.
국내 사례로는 충북 보은 회인의 청년마을 공유주거 프로젝트가 소개됐다. 라이더들이 모이는 고개가 있는 지역의 기존 수요를 정주 거점으로 전환하기 위해 폐원한 유치원을 리모델링해 라이더 유치원을 만든 팀이, 3년짜리 사업이 끝나면 청년들이 머물 공간이 없어 떠나게 된다는 정책적 한계를 확인하고 곧바로 청년마을 공유주거 조성 사업을 연계했다. 이후 생활권 단위 로컬 브랜딩 활성화 사업까지 이어졌다. 민관 자원을 뒤섞었다기보다, 같은 정부 재원 안에서 어떤 단계의 어떤 성격의 재원을 어떤 순서로 엮을지를 설계한 사례다. 1989년 개관해 10년 가까이 매각·철거 논의만 반복되던 군산시민문화회관은 20년 장기 운영권을 민간이 보유하고 수익 창출과 운영의 책임을 민간이 지는 구조로 방향을 틀었다.
"그 돈은 누구 돈입니까"
함께만드는세상(사회연대은행) 안준상 상임이사는 이 영역에서 20년을 보냈다고 했다. 그리고 그 20년 끝에 하고 싶어진 이야기가 금융의 본질이라고 했다.
질문은 단순했다. 은행이 여러분에게 대출해줄 때 그 돈은 누구 돈입니까. "예금을 할 때는 경계가 없습니다. 누구나 들어오죠. 그런데 그 돈을 운용해서 여러분한테 빌려줄 때 혹은 저한테 빌려줄 때, 사회적기업에게 빌려줄 때는 큰 경계와 기준이 있죠." 은행의 어원이 벤치였고 뱅크런은 그 벤치가 부서지는 것이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관계에 기반한 활동이 언제부터 예금자의 돈을 예금자가 판단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운용하는 구조가 되었는가.

배제는 그래서 필연적으로 생긴다. 집이 넉넉하지 않거나 빚이 있는 것이 죄는 아니지만 영업의 대상이 아닐 뿐이다. 안 이사는 이탈리아와 네덜란드의 사례를 대비로 들었다. 예금자가 자기 이자의 일부가 어디에 쓰일지 지정할 수 있는 곳이 있고, 자신이 맡긴 돈이 지역의 어떤 창업에 들어갔는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곳이 있다. 한국의 예금자는 자신의 잔고가 어디에 쓰이는지 본 적이 없고, 자신이 받는 이자 수익이 어떤 활동에서 만들어진 것인지도 알지 못한다.
샌프란시스코의 미션 에셋 펀드(Mission Asset Fund) 사례가 이어졌다. 미국에서 4,500만 명 가량이 금융에서 보이지 않는 상태에 있고, 네 가구 중 한 가구가 금융 위기를 겪으며, 페이데이 대출의 연이자는 500% 수준에 이른다. 이 조직이 택한 방식은 렌딩서클이다. 같은 동네 주민 열 명이 앱으로 모이고 오프라인에서 반드시 만나 순번을 정한 뒤, 각자 10만 원씩 내어 순서대로 목돈을 가져간다. 공급자와 소비자로 갈라져 있던 관계에서 소비자가 생산자의 자리에 서는 구조다. 안 이사는 여기서 벌어지는 일을 이렇게 설명했다. 내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 옆집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건강하고 성실해야 다음 달 내 순번이 돌아온다. 돈 문제로 묶였기 때문에 공동체가 살아난다. 상환율은 99% 이상 이였고, 1% 미만의 부실은 미션 에셋 펀드가 후순위로 받는다.
여기에 하나가 더 붙는다. 이민자는 본국의 신용 이력이 미국에서 0점으로 초기화되기 때문에 렌트도 계약도 어렵다. 미션 에셋 펀드는 렌딩서클 안에서 발생한 상호 금융 이력을 가공해 미국 3대 신용평가사에 전달되도록 했다. 금융에서 배제됐던 사람들이 상호 금융을 통해 신용을 형성하고 제도권으로 넘어가는 발판이 만들어진 것이다.
국내로 시선을 돌리면 지자체가 만든 사회연대경제 관련 기금의 집행률은 5~6% 수준에 머문다. 안 이사는 기금심의위원으로 여러 지자체를 겪으며 확인한 이유를 이렇게 정리했다. 조성된 기금이 훼손되면 담당자의 앞길이 흔들리고, 그 기금을 만든 선출직이 바뀌면 기금 자체가 사라진다. 2012년 무렵 만든 서울시 사회투자기금도 시장이 바뀌자 정리됐다. 정부 예산이든 지자체 기금이든 전부 남의 돈이라는 것, 그래서 당사자가 만든 시드 머니와 책임성이 없으면 정권이 바뀔 때 한 번에 사라진다는 것이 그가 20년 끝에 도달한 지점이었다. 미국이 1978년 지역사회재투자법(CRA)으로 금융기관에 지역 투자 의무를 부과하고 그 이행을 라이선스 평가에 반영하듯, 돈이 모이는 채널을 제도화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함께 나왔다.
퀘백과 이탈리아 볼로냐의 시민 자본 형성이 부럽다고 했다. 기업 기부금만으로는 버틸 수 없고, 시민의 자본이 원금 보존형이든 후원금이든 어떤 형태로든 결합되어야 오래 견디는 자본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로컬에서는 중개 기관이 함께 양성되어야 한다는 말로 발제를 맺었다.
"고향사랑기부금은 기부 받는 게 아니에요. 세금이에요"
피스윈즈코리아 이동환 사무국장은 자신이 4년간 주민으로 살았던 히로시마현 진세키고원의 이야기를 전했다.
인구 7천 명대의 산간 지역으로 피스윈즈재팬이 본부를 옮겼을 때 직원 절반 가량이 그만뒀다고 한다. 서울 사무소가 갑자기 철원으로 가자고 하는 것과 비슷한 결정이었다. 자연재해 위험이 낮고 헬기와 장비를 둘 부지를 확보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고, 지자체는 넓은 부지를 연 임대료 몇만 원 수준으로 제공했다. 지금 이 마을에서 피스윈즈 관련 인력 약 200명이 움직인다. 평상시에는 진료소와 지역 의료, 구조 훈련을 맡고 재난이 발생하면 헬기로 현장에 나간다. 지역에서 결혼해 정착한 직원도 여럿이다.

재원은 고향납세였다. 2016년 유기견 살처분 제로를 선언하고 시작한 피스완코 프로젝트는 히로시마현에서 나오는 모든 개를 데려와 죽을 때까지 돌본다는 뜻이었고, 실제로 연 100억 원대 비용이 들었다. 이 비용이 고향납세로 충당됐다. 2018~2019년에는 연 100억 원 규모가 모였고 2024년에는 40억 원대였다. 정부 지원은 없고 100% 민간 재원으로 운영된다. 현재 2,500마리를 다섯 곳에 나눠 돌보고 있으며, 견사에서는 지역 어르신들이 오전 3시간씩 일한다. 살처분 시설은 운영이 중단된 상태다.
지역에 들어가는 방식에 대해서는 다른 조언을 했다. 처음부터 환영받았을 리 없다는 것이다. 편의점이 하나도 없던 지역에 편의점 본사를 찾아가 매장을 하나 세워주면 헬기에 이름을 새겨주겠다고 제안했고, 그렇게 하나씩 주고받으며 관계를 만들었다. "받으려고 하면 문제 해결이 안 됩니다."
한국의 고향사랑기부제는 시행 4년 차다. 지난해 1,500억 원대가 모였고 올해 목표는 3,000억 원 수준이다. 일본은 10조 원 시장이며 공제 한도가 20만 원인 반면 한국은 10만 원에 머물러 있다. 이 사무국장이 강조한 것은 접근의 프레임이었다. 이것은 기부가 아니라 세금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이 금액의 90%가 12월에 몰리는 이유가 여기 있다. 연말정산 항목이고 답례품까지 받는 제도라면 안 하는 쪽이 손해다. 그러니 프로젝트를 사람들에게 설득하는 방식이 아니라, 세액 공제를 받으려는 직장인이 흥미를 느낄 만한 지역 문제 해결 프로젝트를 설계하는 방식이어야 모금이 된다.
일본 사가현은 젊은 층 중심의 NPO를 인건비를 대며 유치한 뒤 각 단체별로 고향납세 지정 기부를 열어줬다. 현은 심사와 등록, NPO 지정이라는 역할을 맡는다. 한국에서는 아직 단체 지정이 불가능하고, 지자체만 창구를 열 수 있다. 지자체가 창구를 여는 구조는 바뀌지 않을 것이므로 지역과의 연계가 전제 조건이 된다. 피스윈즈코리아는 광주 동구에서 피스멍멍 프로젝트를 지정 기부로 시작했다. 아직 보호소는 운영하지 못해 살처분 제로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현재는 보호소에서 데려온 개들의 입양을 진행하고 있다. 경기 안성에서는 피스냥냥 프로젝트가 선정되어 준비 중이다. 이 사무국장이 마지막으로 남긴 조언은 제도가 열릴 때를 대비하라는 것이었다. 한국은 일본 제도를 계속 벤치마킹하고 있으므로 열릴 방향은 예측 가능하다. 다만 "나도 한번 해볼까"로는 되지 않으니 괜찮은 사람 한 명을 미리 키워두라고 했다.
"공공은 돈을 주는 곳이 아니라, 첫 거래를 해 주는 곳"
스타트폴리오 권우실 대표는 국민연금공단에서 20년을 일하고 사내벤처를 거쳐 나왔다. 지금은 민간과 공공이 함께 일해 양쪽 다 이기는 게임을 설계하는 일을 한다. 공공의 논리와 민간의 언어를 양쪽으로 통역하는 역할이라고 스스로 설명했다.
2014년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이 그 출발점이었다. 당시 공공기관들은 간부들이 어깨띠를 두르고 시장을 한 바퀴 돈 뒤 단체사진을 찍고 한 번 사주는 것으로 사업을 마무리하곤 했다. 상인회장은 다른 데처럼 MOU만 하고 떠날 거면 오지 말라고 했고, 권 대표는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정부 지시로 배송 인력을 뽑았는데 아무도 쓰지 않아 이미 두 명을 내보냈다는 답이 돌아왔다.
기부하거나 한 번 사주고 끝낼 수도 있었지만 다른 선택을 했다. "저는 돈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돈 이상의 거라고 생각해요." 개인 고객을 상대로 봉고차를 움직이는 대신 단체 고객 대상 장보기 배송으로 전환하자고 제안하고, '걱정마요 김대리'라는 브랜드를 붙였다. 온라인 전통시장 배송이 없던 시절이었다. 인근 대학생과 아는 마케터까지 끌어모아 주말마다 8시간씩 회의했고, 상인회가 누가 돈을 준다고 이러느냐고 물을 정도였다. 권우실 대표가 당시 사용한 예산은 포스터 촬영비 100만 원이었다.

결과는 매출 3.3배였다. 홍대 축제에 시장 상인들이 밤새 부친 부침개를 1톤 트럭으로 실어 나르는 식으로 오프라인 매출도 늘었다. 서비스는 지금도 살아 있고 전주 등 다른 지역 시장으로 이전됐다. 시장은 홍대에서 매출이 나오자 그 매출의 일부를 장학금으로 돌리는 관계 확장을 스스로 만들어냈다. 권 대표가 관계 자본이라고 부르는 것이 이 지점이다.
그가 초기 창업팀에 반복해서 하는 이야기는 B2G 레퍼런스가 브랜딩에 필요한 시간을 레버리지한다는 것이다. 좋은 기술을 들고 시장에 나와도 신뢰를 쌓을 시간이 없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리스크를 극도로 회피하는 공공기관이 나와 거래했다는 사실 자체가 공신력 있는 레퍼런스가 되고, 공공은 그 대가로 혁신성과 경영평가 실적을 가져간다. 규모는 상관없다. 1억 원짜리 사업이든 300만 원 사업이든 레퍼런스는 레퍼런스다.
방법은 한 입 크기로 자르는 것이다. 권 대표가 든 예시는 세 가지였다.
지역 쌀로 막걸리를 빚는 양조팀은 국제 행사 만찬주로 들어갔다.
지역 예술인 디자인으로 스카프를 만드는 팀은 공공기관 VIP 기념품과 국립중앙박물관 입점으로 연결됐다.
청년 남성 스타일링 서비스를 하는 팀은 청년 취업 역량 강화 교육이라는 형태로 서울시 50플러스에 들어갔다.
자기 제품을 공공이 지금 가장 아쉬워하는 키워드의 언어로 설명하고, 그들이 소화할 수 있는 크기로 잘라 제안하는 방식이다. 지원금은 1년으로 끝나지만 파트너십은 다음 기관으로 소개된다. 국민연금과 일이 잘되면 건강보험공단으로, 성동구청에서 성과가 나오면 강북구청으로 이어진다.
"응원이 돈이 된다는 걸 보여드리겠습니다"
희망제작소 최나현 연구원의 발제 제목은 인터넷에서 돌던 밈에서 왔다. 예술로 먹고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담은 웃픈 문장에서 예술 자리에 사회문제 해결을 넣어도 사정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 출발점이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그는 20대의 8년을 비영리 시민사회 섹터에서 보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베트남전 과거사 관련 활동을 업으로 삼았고, 사회에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7, 8년이 지나며 소진이 왔고, 좋아하는 일이라는 마음만으로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 남았다. 다시는 이 섹터로 돌아오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퇴사했다.
그리고 두 가지를 결정했다. 1년간 스스로에게 자체 방학을 주는 것, 그리고 탈서울이었다. 서울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일을 시도해봐도 결국 서울이라는 우물 안이라는 감각이 있었다. 그렇게 인구 2천 명 규모의 충북 제천 덕산 청년마을로 갔다. 성수동 인구의 20분의 1이었다.

처음 두 달은 즐거웠고 그 다음이 문제였다. 서울이라는 시스템과 그 안에서 쌓아온 관계와 자원을 한 겹씩 벗겨내고 나면 온전히 자기 자신만 남는데, 그 상태로 살아갈 수 있을지는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프로그램을 중도 하차하고 서울로 돌아가겠다는 말을 꺼냈을 때, 그곳 사람들이 두 가지 이야기를 해줬다. 친구들은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고 했다. 뭔가를 빨리 찾아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은 서울에서 가져온 습관이었고, 그러려고 온 게 아니지 않느냐는 말이었다. 이주 선배들과 청년마을 운영자들은 반대로 뭐든 해도 된다고 했다. 플랫폼은 기차가 오가듯 사람이 들고나는 공간이니 잠깐 머물다 가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방향이 다른 두 이야기가 한 지점에서 만났다. 그녀는 그것을 응원이라고 불렀다. 무엇을 하든 하지 않든 결정에 대한 존중이 있었고, 실험할 시간과 자원을 내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살아남기에서 살아보기로 인식이 옮겨가자 지역이 가능성의 공간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처음으로 누가 시키지 않은 사업을 따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청년 여성 대상 귀농귀촌 교육 프로그램이었고, 도시 청년 여성 30명을 제천으로 데려와 자신이 기획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그해 우수 운영 마을로 선정되어 장관상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정착하지 않았다. 사업보고서의 언어로 그는 정착 실패 케이스다. 자원이 투입됐으나 자원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함께 참여한 다른 청년들은 모두 그 지역에 남았기에 실패했다는 감각은 더 뚜렷했다. 그때 동료들이 다시 물었다. 애초에 이주와 정착이 목적이 아니라 탐색과 확장이 목적이었는데 성공의 기준을 그렇게 잡는 게 맞느냐고. 서울에서는 전세 계약이 끝나 다른 동네로 옮기는 것을 실패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그 대화 이후 자신의 경험을 좋은 실패라고 부르게 됐고, 지역 문제에 대한 관심과 그 경험을 바탕으로 희망제작소에 입사했다.
희망제작소에서 그가 맡은 사업이 소셜디자이너다. 지역사회 문제 해결을 목표로 자기 업을 만들어 기획하고 실행해온 개인과 조직을 가리키는 말이다. 3년간 29개 지역을 방문해 55개 팀을 인터뷰하고 161건의 기록을 축적했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일하는 이들에게서 그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키노트에서 언급된 신뢰 자본의 공백이 이 현장 플레이어들에게 실재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만든 것이 사회적가치투자대회(SIR)다. 설계에서 세 가지를 없앴다.
전문가 중심의 투자 구조를 없앴다. 응원에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더 많은 사람이 응원할 때 그 자본의 가치가 커진다고 봤기 때문이다.
승자 독식을 없앴다. 모의 투자 비율만큼 참여한 모든 팀이 상금을 가져간다.
업종과 주제의 칸막이를 없앴다. 돌봄 문제는 교통 공백, 교육 부재, 문화예술 인프라 부족과 얽혀 있는데 칸막이를 세우면 자원이 많아도 흘러가지 않는다.
대신 세 가지를 만들었다. 시민이 자신의 사회적 가치 기준으로 심사하는 청중 심사단, 10분 발표에 담기지 않는 맥락을 보여주는 테이블 미팅과 현장 인터뷰, 그리고 관람이 아니라 참여가 되도록 하는 모의 투자다.
결과에서 눈에 띄는 것은 설문의 역전이었다. 사전 설문에서 참여 소셜디자이너들이 가장 기대한 항목은 자원과 자금 연결이었다. 대회 이후 기대보다 좋았던 점으로 자원과 자금 연결을 꼽은 소셜디자이너는 한 명도 없었다. 대신 사전에 10% 미만이었던 시민의 반응, 동기 부여, 지지 같은 항목이 크게 올라왔다.
문경에서 카페를 기반으로 지역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참가자는 대회 이후 지역 방송 다큐멘터리에 소개됐고, 늘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느냐고 묻던 어머니가 그 방송을 보고서야 자녀가 어떤 문제를 풀고 있는지 알게 됐다고 했다. 강원 홍천의 김인호 소셜디자이너는 대회 상금과 홍보를 통해 활동이 마을에 알려졌고, 어르신들과 함께 농촌 쓰레기 분리수거 체계를 만들어 운영하면서 그 인건비를 마을이 함께 분담하는 형태로 이어졌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최 연구원이 마지막에 정리한 문장은 이것이었다. 돈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이 자리에 없다. 다만 돈은 응원의 전부가 아니라 응원의 한 방식이어야 한다. 호명, 관계, 신뢰, 기회, 인정, 그리고 돈이 함께 맞물려 작동할 때 비로소 지역에 사람이 남는다. 그래서 질문을 자원을 제공하는 쪽이 아니라 자원을 받는 현장 플레이어의 자리에서 다시 세워보자는 제안으로 발제를 맺었다. 올해 SIR 대회는 11월 말에서 12월 초로 예정되어 있다.
"핵심 결핍은 자금이 아니라 실행력을 촉진하는 장기적 육성과 피어 러닝"
인액터스코리아 이고은 대표는 자신을 아직 로컬을 배우는 단계라고 소개했다. 지난해부터 울산에서 사업을 시작해 1년에 50번 가까이 오간다고 했다.
울산은 도전과 개척의 기업가 정신이 태동한 도시이자 지금은 쇠퇴 지표가 쌓이는 도시다. 그가 청중에게 던진 숫자는 9 대 1이었다. 울산 주요 대기업 내 남녀 일자리 비율이다. 여성이 떠나고, 결혼과 출산 지표가 낮아지고, 초고령화로 진입하며, 청년 순유출률이 상위권으로 올라간다. 20대가 선호하는 비제조업 일자리는 부족하고 대기업 정규직 생산직은 줄고 있다.

인액터스코리아는 서울과 울산의 플레이어들이 함께 울산 문제를 풀되, 서울 플레이어가 경험 자산과 네트워크를 지역에 이전하고 빠지는 모델을 지향한다고 했다. 2개월간 울산의 대학생 창업가, VC, 대학 관계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인터뷰하며 네 가지를 확인했다. 하이테크와 R&D 기반의 제조업 창업 문화가 뿌리 깊어 IT나 서비스, 로컬 창업이 경시되는 분위기가 남아 있다는 것. 관 주도로 실적 중심 운영이 이뤄지다 보니 실행을 지원하는 커뮤니티 문화가 부족하다는 것. 민간 조직이 사실상 없어 스타트업 커뮤니티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 서울에는 흔한, 만나서 시너지를 얻는 인프라가 지역에는 없다는 것.
참조 사례는 미국 콜로라도주 볼더시였다. 인구 10만의 소도시가 1인당 지역내총생산 7만 달러로 미국 상위권에 오른 배경에 볼더 출신 창업가들이 자생적으로 만든 스타트업 커뮤니티가 있었다는 것이다. 창업가가 커뮤니티를 주도하고 경험 있는 기업인이 플랫폼을 이끌어야 한다는 원칙이 핵심으로 소개됐다.
파일럿은 부산·울산·경남을 묶은 대학생 창업 부트캠프였다. 울산에 대학이 세 곳뿐이라 울산만으로는 규모가 나오지 않는다는 현지 인터뷰가 일치했기 때문이다. 고향에 애착이 있고 후배 양성에 진심인 창업가 8명을 멘토로 모아 10개 팀에 1대 1로 붙였고, 3개월간 고강도 인큐베이팅을 진행했다. 임팩트 지표는 트리플라잇과 함께 설계했다.
검증 결과에서 이 대표가 확인한 것은 자금이 아니었다. 참가자들은 공모전이나 지원 사업은 많지만 이렇게 깊이 파고드는 캠프는 본 적이 없다고 했고, 선배 창업가가 장기간 1대 1로 봐주는 프로그램이 없어서 지원했다고 답했다. 부트캠프에서 흔한 중도 이탈이 한 팀에 그쳤다. 애향 창업가로서의 정체성 지표는 62%에서 87.7%로 올랐다. 홍보 메시지 중 반응이 가장 좋았던 것은 프로그램의 우수성이 아니라 서울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지역 효능감을 건드리는 문장이었다.
지방소멸대응기금이 하향식으로 배분되지만 절반가량이 집행되지 못하고, 내려온 돈이 100억, 200억 원 단위로 건물을 짓는 데 쓰이는 동안 문화와 생태계를 만드는 데는 자원이 모이지 않는다는 진단도 함께 나왔다. 이 대표가 그린 5년에서 10년의 그림은 프로그램을 거친 사람들이 중간지원조직 플레이어로 성장하고, 울산에 헤이그라운드 같은 거점을 세우는 것이다.
"농부는 뭐 하는 사람일까요"
마지막 발제자인 사단법인 농의 이지현 대표는 충북에서 아침 버스를 타고 왔다고 했다. 조경을 오래 공부하고 연구원으로 일하다 남편과 함께 10년 전 충북 괴산으로 귀농했다. 표고버섯을 고른 이유는 명확했다. 대자본이 투입되지 않고 대기업의 영향을 받지 않는 작물 중에 가장 빠르게 배울 수 있으면서 수익이 나는 작물이었고, 그것을 가장 잘하는 지역이 괴산 감물면이었다.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토마토와 알로에 음료를 사 들고 지역 농부들을 찾아다니며 농사를 가르쳐달라고 했다. 자녀뻘이라며 챙겨준 선생님들 덕에 1년 만에 다른 작물까지 짓게 됐다. 8천 평 감자밭에서 마지막 감자를 캐고 흙 위에 앉아 있을 때 맡은 흙냄새를 그는 아직 기억한다고 했다. 서울에서는 불쾌했을 그 냄새가 그때는 감사함이었다.
그리고 질문이 하나 생겼다. 의사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냐고 물으면 사람을 살리는 직업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농부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냐고 물으면 농산물을 기르는 사람, 우리 먹을 것을 해주는 고마운 사람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의사에게는 가치가 붙는데 농부에게는 행위만 붙는다. 그는 이 비대칭을 이렇게 되돌려 말했다. 농부를 행위로 표현하듯 의사를 표현하면 배를 갈라 종양을 제거하는 사람이라고 해야 한다고.

농부가 마음을 잘못 먹으면 많은 것을 죽일 수 있고, 1년만 제대로 노력하면 죽은 땅을 살릴 수 있으며, 그 땅에서 난 농산물을 먹은 사람이 산다. 그런데 왜 이 일이 고생스러운 일, 도시에서 실패한 사람이 하는 일로 이야기되는가. 문제의 뿌리를 파고들다 그는 농업이 농산물로만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닿았다. 15만 원짜리 표고버섯을 사는 사람에게 그는 특급 농부이고, 킬로그램에 8천 원에 사는 사람에게는 8천 원짜리 농부다. 그 사람들에게 그는 표고버섯일 뿐이다.
앞 세대 농부들 중에는 집안을 위해, 형제를 위해 억지로 그 자리에 있어야 했던 이들이 있었다. 지금 세대는 선택해서 농부가 됐다. 그렇다면 농업의 가치를 셰프의 입이나 환경운동가의 입을 빌려 설명하는 구조를 자기 세대에서 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모인 농부들이 만든 회사가 뭐하농이다.
정부 사업, 공간 운영, 경작 디자인, 교육, 콘텐츠까지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다. 그러다 소비자들이 뭐하농이 무슨 회사인지 정확히 모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교육으로 온 사람은 카페가 있는 농장으로 알았고, 카페로 온 사람은 여기가 교육도 하느냐고 물었고, 제품은 카페 굿즈로 인식됐다. 투자자 한쪽은 커뮤니티처럼 돈 안 되는 일을 접고 제품에 집중하라고 했고, 다른 쪽 재단은 카페 말고 커뮤니티에 집중하라고 했다. 세무사는 정부 사업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는 각 사업이 각자 잘 자라도록 브랜드를 분리하기로 했다. 소비자에게 필요한 것을 제대로 주는 브랜드로 에트하우스를 지난해 새로 만들었고, 뭐하농은 교육을 맡았다. 가치를 앞세운 메시지가 제품에 붙는 순간 상품 가치가 떨어지고 구매가 기부의 형태로 바뀐다는 것을 여러 번 확인한 뒤의 결정이었다.
그리고 농업의 의제를 만드는 일은 뭐하농 혼자가 아니라 전국의 동료들과 함께하기로 했다. 통칭 농게더링이다. 첫 모임 포스터에는 포럼도 회의도 아니라고 적었다. 각자 지역에서 어렵고, 농업인이라고 왔는데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도 있고, 이런 고민을 하면 쓸데없는 소리 말고 농사나 제대로 지으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 그러니까 딴짓한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들 다 모여보자는 것이었다. 제주도에서까지 올라와 80명이 모였고, 새벽 4시까지 아무도 숙소로 들어가지 않았다. 주제는 우리는 왜 농촌에서 사는가였고, 그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밤새 함께 울었다.
농촌에는 농산물 유통과 생산을 중심으로 한 목적성 있는 공동체는 있지만, 농사를 짓지 않는 절반의 사람들과 농사만으로는 살 수 없어 다른 방법을 붙여야 하는 작은 농업인들의 고민을 나눌 공동체는 없었다. 그래서 모임은 정기화됐다. 농번기 전인 3~4월과 농사가 끝나는 11월, 1년에 두 번이다.
하동에서 열린 모임을 앞두고 장관실에서 연락이 왔을 때, 그는 조건을 걸었다. 사회권을 자신에게 완전히 넘길 것, 관계자들이 개입하지 않을 것, 질문은 자신들이 만들고 거기에 손대지 말 것. 그 조건으로 진행한 모임에서 나온 건의 사항들이 한 달 뒤 장관 발표에 반영됐다. 참가자들이 확인한 것은 자신들의 이야기가 술자리의 개인적 하소연이 아니라 지금 농촌에서 중요한 이야기였다는 사실이었다. 이 경험이 사단법인 설립으로 이어졌다.
그가 짚은 구조적 문제 하나는 호칭에 있었다. 농업기술센터 공무원의 직함은 지도사다. 농촌에 있는 사람은 가르치고 도와야 하는 존재라는 전제가 오래 박혀 있었고, 그래서 주민이 목소리를 낼 창구 자체가 없었다는 것이다. 농게더링은 연결하고 기록하고 연구하고 교육하는 네 가지를 표방하지만 목적은 하나라고 했다. 모여서 이야기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이 듣게 하는 것. 올해 국제 포럼은 10월 말 괴산에서 열린다.
발제 마지막에 그는 앞선 발제자들과 자신이 다른 지점을 짚었다. 사회 문제 해결 같은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고 했다. 이 일이 자신의 감정을 뒤흔들어서 재미있고, 농업을 생각하면 오열하게 되고, 그 동료들을 만나면 행복하고, 우리가 하는 일이 자랑스럽기 때문에 계속한다고 했다. 소도시가 소멸하는 방식과 농촌이 소멸하는 방식이 다르고 재생의 방법도 달라야 하는데 정책은 그 속도를 따라오지 못한다는 문제의식도 함께 남겼다.
남은 질문
이날 사례 발제자들은 성공담을 들고 나오지 않았다. 박정웅 팀장이 사전 미팅에서 하나같이 "나를 주어로 이야기를 해주세요"라고 주문했다는데, 그렇게 꺼낸 개인 서사는 대체로 균열에서 시작했다.
최나현 연구원은 보고서의 언어로 자신이 정착 실패 케이스라고 먼저 말했다. 같이 갔던 청년들은 다 지역에 남았고 자기만 서울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감추지 않은 채로, 그 실패를 좋은 실패라고 다시 불렀다. 이지현 대표는 첫 농게더링에서 제주도까지 올라온 80명이 새벽 4시까지 울었다고 했고, 발제 마지막에는 자신이 사회 문제 해결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이 일이 감정을 뒤흔들어서 계속한다는 것이었다. 안준상 이사는 20년이 지나서야 이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것 같다고 했고, 이동환 사무국장은 편의점 하나부터 세워 환심을 산 뒤에야 지역의 자산이 될 수 있었다고 했다. 권우실 대표는 상인회장에게 MOU만 하고 떠날 거면 오지 말라는 말부터 들었다.
지역에 사람이 남게 하는 자본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발제자들은 정리된 모델 대신 자기가 통과한 시간을 내놓았다. 최나현이 응원을 자본이라고 부를 수 있었던 건 그 응원을 자기가 먼저 받아봤기 때문이고, 이동환이 주고받는 순서를 그렇게까지 강조한 건 반대의 방식으로 실패해봤기 때문이다. 이지현이 목소리를 낼 창구 없이 지도의 대상으로만 취급받는 구조를 짚어낸 건 자신이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사례가 모델보다 힘이 셌던 이유는, 그 사례를 만든 사람이 그 안에 자기를 넣어두고 있어서였다.

김소선 매니저가 오프닝에서 남긴 질문이었던, 지원이 끝난 뒤 지역에 무엇이 남는가와 주민이 자본의 의사결정에 어떻게 참여하는가는 이날 끝내 하나의 답으로 수렴되지 않았다. 다만 여섯 사례가 공통으로 가리킨 방향은 있었다. 남는 것은 돈이 아니라 그 돈을 통과한 사람이고, 그 사람이 다음 판단의 근거가 될 때 로컬의 인지적 리스크가 한 겹 줄어든다. 이날 쌓인 여섯 겹이 다음 자본의 판단에 실제로 쓰이는지는, 이 사례들의 다음 시즌이 답할 몫이고, 이야기의 다음 주인공은 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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