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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임팩트 커리어 2.0 - Deep Dive "사람이 자라는 조직의 조건" (26/05)

by 임팩트얼라이언스 2026. 6. 10.

이미지 출처 : 비랩코리아 발제자료 중

5월 27일 오후, 헤이그라운드 서울숲점. '임팩트 커리어 2.0 : 함께 시스템을 설계하다' 컨퍼런스의 딥 다이브 세션 중 하나로 비랩코리아와 임팩트얼라이언스가 함께 준비한 자리가 열렸다. 주제는 "사람이 자라는 조직의 조건". 참석자들의 이름표에는 직급이 없었다. 누가 대표이고 누가 직원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모두가 스마트폰을 꺼내 실시간 투표 화면에 접속하는 것으로 세션이 시작됐다.

왜 '공정한 노동'인가

본격적인 대화에 앞서 비랩코리아 이미진 님이 이 자리가 만들어진 배경을 소개했다. 비랩(B Lab)은 기업의 힘으로 사회 변화를 만들려는 글로벌 비영리 네트워크로, 전 세계 104개국에 1만 800개 이상의 비콥(B Corp) 인증 기업이 있고 한국에는 34개 기업이 있다. 흥미로운 비유가 있었다. 대부분의 인증이 받는 순간 마침표를 찍는 느낌이라면, 비콥은 스타트 라인에 같이 서는 느낌이라는 것. 그래서 비랩은 인증 기업들을 '커뮤니티'라고 부른다.

올해부터 비콥 인증 표준은 기존 5개 영역에서 7가지 임팩트 주제로 개편됐고, 그중 하나가 이날의 주제인 '공정한 노동(Fair Work)'이다. 비랩코리아는 지난해 SOVAC에서의 카카오같이가치 모금을 계기로 이 주제를 다루는 교육 영상 시리즈를 제작했고, 그 강의를 맡았던 세 사람 - 서진석 비랩코리아 이사(이노소셜랩 이사), 이은경 비랩코리아 이사(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실장), 조선희 비랩코리아 자문위원(법무법인 린 변호사) - 이 이날 패널로 다시 모였다.

멘티미터를 활용한 첫 투표에서 참석자들의 관심사를 물었다. 커리어, 노동, 사회문제 해결 중 커리어에 표가 가장 많이 몰렸다. 10년간 국제 NGO에서 일하다 번아웃과 함께 조직을 떠났다는 한 참석자는 "소모되는 사람이 아니라 노동으로써 조직이 더불어 성장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커리어에 투표했다고 말했다. 노동에 투표한 다른 참석자는 조직의 중간 위치에서 겪는 갈등을 꺼냈다. 선배들은 "예전보다 노동 환경이 많이 개선됐다"고 말하고, 후배들은 "지금 노동 조건이 좋지 않으니 더 좋은 곳으로 가고 싶다"고 말하는 사이에 자신이 끼어 있다는 것이다. 이날 세션 전체를 관통하게 될 긴장이 시작부터 플로어에서 나온 셈이다.

그 조직은 건강한가

서진석 이사는 임팩트 생태계가 오랫동안 묻지 않아온 질문 하나를 꺼냈다. 우리 사회는 임팩트를 지향하는 조직이 만드는 사회 혁신에 대해서는 이야기해왔지만, "과연 그 조직은 건강한가"는 묻지 않아왔다는 것이다. ESG 펀드와 소셜벤처 현장을 다녀보면 그 기업이 만드는 임팩트는 보이는데, 그 조직 자체가 건강한지는 우리 사회가 심층적으로 들여다보지 않았다고 했다. 비콥의 새 표준이 공정한 노동을 전면에 세운 것은 바로 이 질문을 본격적으로 던지자는 의미라는 설명이다.

이은경 이사는 이 논의가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국제사회가 오래 쌓아온 흐름 위에 있다는 점을 짚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100년이 넘었고, UN은 '양질의 일자리(Decent Work)'라는 개념의 틀을 잡는 데 긴 시간을 썼다. 비콥의 페어워크는 거기서 한 걸음 나아가, 노동자가 실제로 공정하게 일한다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보다 실질적인 논의라는 것이다. 핵심은 비콥의 정신 자체에 있다. 주주 이익 극대화가 아니라 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이해관계자가 기업의 소중한 자산이며, 노동자와 함께 성장하는 것이 기업의 가치가 된다는 관점이다.

그는 한국의 시간 감각도 환기했다.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직원의 백혈병이 산업재해로 공식 인정되기까지 10년이 걸렸고, 그 회사에 노조가 만들어진 것은 2019년이었다. "병들지 않고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이야기한 지 몇 년 안 됐다"는 말에는, 한국 사회가 너무 빠르게 달려오느라 숙고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는 진단이 담겨 있었다. 모더레이터인 임팩트얼라이언스 박정웅 팀장은 이를 고령화 속도에 비유했다. 영국이 100년에 걸쳐 겪은 변화를 일본은 30년, 한국은 10년 만에 통과하다 보니 "숙고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다.

사진 출처 : 루트임팩트

임금 이력을 묻지 않는 세계

조선희 변호사의 이야기는 법률 실무의 구체적인 장면에서 출발했다. 한국에서는 채용 면접에서 "지금 얼마 받고 계세요?"라는 질문으로 직전 연봉을 확인하는 것이 상식처럼 통용되고, 변호사로서 고객사에 직원 임금 정보를 영업비밀로 관리하라고 자문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국제사회에서는 정반대다. 임금 이력 자체가 차별적 임금 지급의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묻지 못하게 하는 정책이 확산되고 있고, EU는 급여 범위를 노동자에게 의무적으로 알리고 성별 임금 격차를 공시하도록 하는 임금투명성 지침까지 제도화했다.

동시에 그는 균형 잡힌 시각도 보탰다. 비콥 인증 기준을 들여다보면 한국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것들 - 근로계약서 서면 작성, 아동 노동에 대한 체계적 보호 장치 - 을 묻고 있는데, 그것을 묻는다는 사실 자체가 다른 나라에서는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는 방증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노동 환경이 어떤 영역에서는 앞서 있고 어떤 영역에서는 국제적 상식을 미처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입체적인 좌표가 그려지는 대목이었다.

보상만이 공정함은 아니다

두 번째 투표에서 "공정한 노동이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것"을 물었더니 임금투명성, 평가 기준, 충분한 보상 등 보상 관련 답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서진석 이사는 이 결과에 "깜짝 놀랐다"며 말을 이었다. 보상 체계는 공정한 노동의 일부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독일 철학자의 소외 개념인 생산물로부터의 소외, 생산 과정으로부터의 소외, 인간에 의한 인간의 소외를 거꾸로 뒤집으면 공정한 노동의 윤곽이 나온다고 했다. 첫째는 공정한 보상이지만, 둘째는 참여하는 주체로 서는 관계적 측면이고, 셋째는 내 일이 사회 변화와 연결되는 자아실현의 측면이다. 그리고 둘째와 셋째는 오히려 작은 조직이 더 잘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중소기업과 임팩트 조직은 임금에서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 서 있지만, 존엄과 참여와 사회 변화의 감각마저 기울어진 채 설계되어 있다면 작은 조직이 잘할 수 있는 것조차 놓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반문이었다.

박정웅은 여기에 생활의 감각을 얹었다. 임팩트 생태계에서 일하는 것의 장점을 묻는 사람들에게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다"고 답한다는 것이다. 여름에 수박이 먹고 싶을 때 내 돈으로 사지 않아도 누군가 사다 주는 관계. 가처분소득으로 환산되지 않지만 삶의 질을 채워주는 이 관계야말로 우리가 놓치기 쉬운 'decent'의 요소라는 이야기에 웃음이 번졌다.

조선희 변호사는 작은 조직의 그늘도 직시했다. 소셜벤처에서는 공정한 노동이 대표 한 사람의 카리스마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고, 그 관계가 틀어지면 회복이 어렵다. 대표는 자신을 믿고 입사한 직원이 5개월 만에 떠나는 것을 자기 능력 부족으로 자책하고, 직원은 더 좋은 조건을 포기하고 왔는데 기대와 다른 현실에 부딪힌다. 모든 구성원에게 평균적인 복지와 만족도를 시스템으로 보장하려면 결국 대기업밖에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는 솔직한 토로도 있었다.

내 삶부터 임팩트 있게

이은경 이사는 좋은 일도 하고 싶고 돈도 벌어야 하는 임팩트 생태계 종사자의 '현타'를 그 누구보다 잘 안다고 전제한 뒤, 질문을 되돌려주었다. 왜 이 일을 하는가. 공정한 보상 기준은 모든 리더가 고민해야 할 화두이고 사회 구조적으로 바꿔야 할 문제이지만, 그런 리더가 없다면 "내가 그런 리더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내 삶에 임팩트가 안 일어나는데 무슨 임팩트 생태계를 만듭니까. 내 인생부터 임팩트 있게 살아줘야 하잖아요."

그는 동료의 정의도 새로 내렸다. 같은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전혀 다른 곳에서 일하더라도 같은 가치와 이상으로 꿈꾸는 사람들이 동료라는 것. "여기 있는 분들도 동료죠." 그 동료들과 연대해 힘을 키우고, 제도는 제도대로 바꾸고, 무가치함의 현타에 지지 말고 가치를 계속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임팩트 생태계라고 했다.

서진석 이사는 이 관점을 커리어론으로 확장했다. 그는 '임팩트 커리어 = 임팩트를 만드는 조직에서 일하는 것'이라는 정의는 매우 좁은 해석이라고 했다. 임팩트 생태계는 완성되어 있지 않고, 진입과 동시에 고민이 끝나는 곳이 아니라 조직의 성장과 생태계의 성장을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 변화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커리어의 관점에서 조직은 거쳐 가는 성장의 사다리일 수 있지만, 임팩트의 관점에서 조직은 그 자체로 변화의 현장이다. "임팩트 커리어는 커리어로 시작했지만 임팩트로 끝나는 과정"이라는 그의 문장은 이날 세션의 제목인 "사람이 자라는 조직의 조건"에 대한 하나의 답처럼 들렸다. 성장이란 개인의 문제의식이 사회 전체의 문제로 연결되고, 그 속에서 자신을 자리매김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균형이라는 숙제

마지막으로 세 사람은 '우리에게 필요한 균형'에 대한 생각을 나눴다.

조선희 변호사는 세대 간 이해관계의 차이를 전제하고 서로를 대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한국의 노동 논의가 최저임금 같은 하방의 권리를 지키는 싸움에서 성과공유제와 하청업체까지의 이익 배분을 논하는 단계로 넘어왔다는 점을 짚었다.

이은경 이사는 세상의 기준과 다른 방식으로 사는 일은 원래 괴로운 것이지만, 좋은 일을 한다는 이유로 실력과 타협해서는 안 된다는 것. 오히려 더 샤프하게 역량을 쌓아야 임팩트가 커진다고 했다. 기여와 책임 없이 보상과 권한만 이야기하면 모든 것이 깨진다는 경고, 그리고 초과 성과를 누가 어떻게 나눠 갖는 것이 공정(fair)한가라는 질문을 함께 고민하자는 제안이 이어졌다.

서진석 이사는 두 가지 균형을 제시했다. 직장(job), 커리어, 개인의 콜링(calling), 사회적 콜링을 적절히 섞는 균형, 그리고 개인의 미션과 조직의 미션 사이의 균형이다. 둘이 완전히 일치할 수는 없으니 공통분모를 넓히되, 개인의 미션을 좇으려면 자신의 결실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자신은 2018년부터 8년간 매주 한 편씩 블로그(Beyond CSR)에 글을 써 500편에 이르렀다고 했다. 우리 사회의 ESG 패러다임을 조금이라도 바꾸는 것이 그가 꾸는 꿈이다.

사진 출처 : 루트임팩트

세션을 닫으며 모더레이터가 남긴 말이 오래 남는다. "마을 밖을 알고 마을에서 사는 것은 주체적인 선택이지만, 마을 밖을 모르고 마을에서 사는 것은 주체성을 미처 느껴보지 못하는 삶일 수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만들고 있는 물결이 모여 물살이 되고, 그 물살이 방향을 바꾸는 장면을 목격하고 싶다는 바람과 함께 세션이 마무리됐다.

직급 없는 이름표를 달고 모인 사람들은 그날 적어도 한 가지 공통점을 확인하고 돌아갔다. 하는 일도, 고민도, 삶의 맥락도 다르지만 우리는 모두 일하는 사람이라는 것. 공정한 노동이라는 큰 주제는 어쩌면 그 공통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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