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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임팩트 금융의 '오케스트레이션'을 향하여

by 임팩트얼라이언스 2026. 4. 24.

10년의 회고와 담대한 상상: 임팩트 금융의 '오케스트레이션'을 향하여

글. 정보라 커뮤니티 파트너 (Linkedin)

임팩트와 돈. 임팩트 투자가 처음 등장했을 때, 서로 반대 지점에 있을 것 같은 '사회적 가치'와 '자본'이라는 단어의 조합은 무척이나 생소했습니다. 하지만 2009년 이탈리아 벨라지오 센터에서 록펠러 재단 등이 주도해 이를 정식으로 정의한 이후, 임팩트 투자는 '자선(Charity)'의 한계를 넘어 벤처의 성장 방법론을 사회 문제 해결에 적용하는 강력한 도구로 자리 잡았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임팩트 투자가 뿌리내린 지도 어느덧 10년. 이제 임팩트 투자는 우리에게 낯선 외국어가 아닌, 충분히 설명 가능하고 이해 가능한 언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임팩트 생태계 종사자로서 현장을 지키며 마주한 현실은 여전히 무거웠습니다. "해결하고 싶은 문제는 거대한데, 우리가 쥔 도구는 너무 작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흔히 한국의 자본 시장에 돈이 없다고들 하지만, 사실 기업의 CSR 예산이나 대형 재단들의 기금 규모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 돈이 '흐르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복잡한 행정 절차, 보수적인 성과 지표, 그리고 무엇보다 이해관계자 간의 '사회문제 정의'에 대한 합의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자본은 자연히 안전한 곳, 즉 이미 검증된 작은 프로젝트들로만 쪼개져 흘러갑니다. 우리는 지난 10년 간 수많은 작은 성공들을 목격해 왔지만, 이제는 냉정하게 되짚어봐야 합니다. 그 성공들이 모여 과연 사회적 난제를 '뿌리 뽑는' 수준까지 도달했는가?

풀뿌리식의 작은 프로젝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생태계의 기초체력을 다지는 데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거대 자본이 집중 투여되어 사회적 난제를 단번에 돌파하는 방법론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방식이 세밀한 '외과 수술'이었다면, 때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뒤흔들 '대규모 인프라 공사'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아직 대규모 자본을 운용해 본 경험이 부족하고, 리스크를 감당할 근육도 약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거대 자본이 움직여야만 비로소 해결될 수 있는 거시적 난제들이 우리 앞에 산적해 있습니다. 이제는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한 시도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2024~2026: 더 담대하고 구체적인 질문들

임팩트얼라이언스는 지난 2024년 12월, 향후 세 가지 방향성을 공유하며 그중 하나로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주요 아젠다로 제시했습니다. 밸류체인에 기반한 규모화와 '벤처 필란트로피'에 대한 아젠다를 확산하고, 임팩트 생태계의 새로운 성장경로에 대한 필요성을 담은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이어 2025년에는 '임팩트 PF'와 'M&A'라는 주제를 통해 금융을 단순한 자금 조달을 넘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관점(Lens)'이자 '도구(Tool)'로 해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26년 3월, 그 흐름은 'Capital Orchestration for IMPACT'라는 주제로 이어졌습니다. 오케스트라가 각기 다른 악기를 조율해 하나의 곡을 완성하듯, 금융·공공·민간·현장의 활동가들이 각자의 자본과 역량을 조율해야 한다는 시의적절한 화두였습니다. 이번 'SOVAC Salon X 임팩트써밋'은 임팩트얼라이언스, SOVAC, 아름다운재단, 루트임팩트, 임팩트스퀘어, 임팩트확산네트워크 등 생태계의 주요 플레이어들이 모여 이 담대한 상상을 구체화하는 자리였습니다.

"금융의 속도가 아닌, 현장의 속도에 금융을 맞춘다면?"

기획 의도를 설명하기 위해 마이크를 잡은 임팩트얼라이언스의 정웅 님은 지난 10년에 대한 묵직한 회고를 던졌습니다.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사회적 비즈니스와 투자를 결합해 예측 가능한 서사를 만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새롭게 나타나는 복합적인 문제들 앞에서도 이 방식이 여전히 유효할까요? 지금까지는 우리가 금융의 속도에 현장을 맞춰왔다면, 이제는 우리(현장)의 속도에 맞는 금융 역량을 가져야 할 때가 아닐까."

기존의 용역, 공모, 배분, 지분 투자 방식은 여전히 효과적이지만, 때로는 단기적이고 개별적인 협력에 그치게 만드는 구조적 한계가 있습니다. 더 큰 사회적 임팩트를 위해서는 더 큰 협력이 필요하고, 그 협력을 가능케 하는 새로운 금융적 방법론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Open Lecture] 한양대학교 강창모 교수 : 임팩트 금융의 지형

주파수 맞추기 - 임팩트 금융은 '자선'이 아닌 '산업'이다. 

행사의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진행된 오픈 렉처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주파수를 맞추는 시간이었습니다. 임팩트 금융이 제시된 현장에서는 여전히 '임팩트'와 '금융'의 결합을 두고 서로 다른 상상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날의 메시지는 명확했습니다. 우리가 해결하려는 문제의 크기에 걸맞은 자본을 끌어오기 위해서는, 임팩트 금융이 단순한 선의를 넘어 하나의 '산업'으로 기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전통적인 '채러티(Charity)'와 '벤처 필란트로피'를 구분 짓는 지점이었습니다. 자금을 제공한 후 펀더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방식을 전통적 기부로 정의한다면, 벤처 필란트로피는 VC(벤처캐피탈)와 닮아 있습니다. 초기에는 고위험 조직에 자금을 투입할 뿐만 아니라, 네트워킹·조직 관리·임팩트 측정 등 비재무적 지원을 통해 조직을 끝까지 키워냅니다. 즉,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필란트로피의 양상이 벤처의 방식을 차용하는 진화를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본의 형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보조금이든, 대출이든, 지분이든 그 조직의 성장에 가장 적합한 방식을 '조립'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오픈렉처에서 강창모 교수는 재무 중심 투자부터 임팩트 전용 자본까지의 스펙트럼을 짚어주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통찰은 스펙트럼에 놓인 자본의 형태 간 ‘경계선’에 있는데요. 지속가능투자(ESG 등)가 기업 가치를 지키기 위한 ‘방어적’ 수단이라면, 임팩트 투자는 그 중심축이 '사회문제 해결'로 완전히 옮겨온 상태를 의미합니다.

수익률을 일부 혹은 상당 부분 양보(Concessionary)할 수 있는 자본과, 시장 수익률을 고수하는(Non-concessionary) 자본이 이 스펙트럼 안에 공존합니다. 우리가 이 판을 '산업'으로 키우려면, 이질적인 성격을 가진 자본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한데 섞여야 합니다.

출처 : SOVAC Salon X 임팩트써밋, 한양대학교 강창모 교수 발제자료 중 일부

현재 글로벌 임팩트 투자 규모는 약 2,356조 원($1.57T)에 달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지점이 있습니다. 투자 기관의 평균 운용 자산은 1.5조 원인 반면, 중위값은 630억 원에 불과합니다. 즉, 대다수는 소규모인데 일부 거대 플레이어가 시장을 견인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거대 자본(주류 자본)'을 이 생태계로 초대하기 위해서는 '촉매적 자본(Catalytic Capital)'의 역할이 절대적입니다. 거대 자본을 부르는 마중물을 설계하는 데에는 묘미가 있습니다. 공공이나 재단의 자본이 먼저 리스크를 받아주는 완충 지대를 만들면(즉, 이게 양보적 대출, 지분투자로 역할하고요), 그 뒤를 따라 시장 수익률을 원하는 거대한 민간 자본이 안심하고 들어올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겁니다. 

결국 Capital Orchestration(자본의 오케스트레이션)이란, 서로 다른 기대 수익률과 리스크 감내 수준을 가진 자본들을 정교하게 조립하여, 혼자서는 풀 수 없었던 거대한 사회적 난제에 '압도적인 자본의 힘'을 실어주는 설계 역량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특히 강창모 교수가 "이제는 금융의 속도에 현장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현장의 필요에 금융이 답해야 한다”고 언급한 대목은 굉장히 인상 깊었는데요. 국내 임팩트 금융 규모도 어느덧 6.6조 원(24년 말 기준)을 넘어섰습니다. 규모는 커졌지만, 여전히 우리는 '작은 프로젝트의 반복'이라는 관성에 갇혀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함께 정렬한 이 언어들을 도구 삼아, 더 담대하게 자본을 설계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한국형 사례를 만들어가야 할 때입니다.

 

[발제와 대담] “Impact Capital as a Spectrum” 

[발제 1] 루트임팩트 허재형 대표: 신뢰 기반 필란트로피 

비영리 생태계의 아픈 손가락: '성장' 대신 '버티기'

허재형 대표는 가장 먼저 비영리 조직이 마주한 '악순환의 고리'를 지적했습니다. 많은 조직이 원대한 미션을 품고 시작하지만, 현실은 냉혹합니다. 대부분의 지원금이 인건비나 임대료 같은 '간접비'에는 인색합니다. 1년 미만의 짧은 사업 기간은 장기적인 호흡을 막습니다. 사업비가 제대로 쓰였는지 확인하는 세세한 증빙 절차는 현장의 에너지를 '해결'이 아닌 '행정'에 쏟게 만듭니다. 이런 구조적 문제 때문에 한국의 비영리는 대형 조직과 아주 작은 소규모 조직으로 양극화되어 있고, 허리 역할을 할 중견 비영리 조직이 자라나지 못하는 토양이 되었습니다.

이 악순환을 깨기 위한 해법으로 제시된 것이 바로 '신뢰 기반 필란트로피'입니다. 핵심은 간단합니다. "문제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가장 좋은 판단을 할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기존의 관계가 불신에 기반한 '관리와 통제'였다면, 이제는 '신뢰와 협력'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한 6가지 원칙은 펀더(Funder)와 수혜 조직의 권력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 집중합니다.

첫번째, 다년간 비지정 자금을 제공할 것, 용도를 제한하지 않는 긴 호흡의 자금이 조직을 춤추게 합니다. 두번째, 펀더가 먼저 공부할 것, 지원 조직이 찾아오길 기다리지 말고, 펀더가 먼저 현장을 공부해야 합니다. 세번째, 서류를 간소화할 것, "펀더가 부지런해지면, 현장은 실행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투명하고 반응적인 소통과 피드백을 요구할 것, 펀더 역시 파트너로서 제대로 하고 있는지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비재무적 지원 또한 제공할 것, 자금 그 이상의 성장을 돕는 파트너십이 필요합니다.

출처 : SOVAC Salon X 임팩트써밋, 루트임팩트 허재형 발제자료 중 일부

루트임팩트 스스로가 이 신뢰의 가장 큰 수혜자였다는 고백은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설립 초기부터 13년간 용도 지정 없는 고액 후원을 받았기에, 실패 위험이 있는 실험적인 시도를 지속할 수 있었고 '헤이그라운드'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도 꿈꿀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루트임팩트는 IP1 기금 등을 통해 본인들이 받았던 그 신뢰를 다시 생태계로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기금에 참여한 조직들은 자율적으로 임팩트를 창출하는 역량이 눈에 띄게 구축되는 변화를 보였습니다.

"금전적 자본은 쓰면 없어지지만, 신뢰 자본은 쓰면 쓸수록 더 축적되고 커지는 힘이 있습니다."

허재형 대표의 발제 마지막 문장은 이번 행사의 대주제인 'Capital Orchestration'의 진정한 의미를 완성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조율해야 할 자본은 단지 통장에 찍힌 숫자가 아닙니다. 현장의 전문성을 믿어주고, 그들이 역량을 기를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는 것. 그리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더 큰 성과를 만들어내는 선순환 구조를 짜는 것. 그것이야말로 생태계의 병목을 뚫고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거대한 임팩트'를 터뜨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론이 아닐까 싶습니다.

[발제 2] 아름다운재단 김진아 사무총장 : 임팩트 생태계의 앵커 - '인내'는 어떻게 '촉매'가 되는가?

인내하는 자본의 힘: 재단은 어떻게 임팩트의 앵커가 되는가

아름다운재단은 특정 기업이나 종교의 자본이 아닌, 70%의 대중 기부자와 30%의 기업 기부자가 모여 만든 '커뮤니티 파운데이션'입니다. 현재 운용 중인 430억 원 규모의 기금은 단순히 자산 증식의 수단이 아닙니다. 장기적인 문제 해결을 가능케 하는 '지속 가능한 안전망'입니다.

김진아 사무총장은 아름다운재단에서 10여 년간 경영팀을 맡으며 "숫자로만 보이던 기금이 사회를 바꾸는 자본으로 보이기 시작했다"고 고백하며, 이 자본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혹시 지금의 방식이 유효 기간이 지난 것은 아닌지 자문하게 되었다고 전했습니다.

재단은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인내 자본'과 '촉매 자본'의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공익단체 인큐베이팅’ 사업을 통해 초기 시드(Seed)를 제공해 비영리 단체를 키워냈고, 이는 이후 아산나눔재단이나 브라이언임팩트 같은 후속 지원 기관으로 이어지는 레퍼런스가 되었습니다. ‘지리산작은변화지원센터는 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지역 거점을 구축하여, 지역 활동가들이 마음껏 파생 사업을 벌일 수 있는 '토양'을 만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희망가게(마이크로크레딧)’은 2003년 기부받은 주식이 20년의 세월을 거치며 50억에서 160억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회수 압박 없는 자본이 한부모 여성 가정의 자립을 돕는 선순환의 증거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기존 방식의 한계도 뚜렷해졌습니다. 가장 공정하다고 믿었던 '공모 배분' 방식은 급변하는 사회 문제 속도에 비해 너무 느렸습니다. 또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는 이제 영리와 비영리의 경계를 넘나드는데, 여전히 '비영리 법인'이라는 틀에 갇혀 지원 대상을 한정 짓는 것이 과연 본연의 역할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습니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 재단 내부에서도 임팩트 투자를 검토했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습니다. "수익사업인가 공익사업인가"를 묻는 내부 거버넌스의 이해 차이, 그리고 의결권 있는 주식 지분 5% 이상 보유 시 발생하는 세제 리스크(가산세) 등 법·제도적 걸림돌이 산적해 있었습니다.

"우리는 프리시드(Pre-seed)의 촉매가 되겠습니다"

김진아 사무총장이 제안한 해결책은 '자본의 이어달리기'입니다. 재단이 가진 '시민의 자본'을 단순히 안전하게만 운용하는 리스크 회피에서 벗어나, 전략적으로 재배치하자는 것입니다. 재단이 임팩트 투자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대신, 투자사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초기의 리스크를 재단이 '인내 자본'으로 받아주고, 이후 시장 수익률을 고려하는 임팩트 투자사들이 바통을 이어받아 스케일업(Scale-up)하는 구조를 상상합니다.

출처 : SOVAC Salon X 임팩트써밋, 아름다운재단 김진아 발제자료 중 일부

"자금의 흐름을 기존 금융의 틀로만 가두지 말아야 합니다. 시민들이 모아준 자금은 그 자체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권력'이자 '에너지'입니다."

발제의 마무리에 등장한 서핑 이미지는 많은 참석자의 공감을 얻었습니다. 새로운 시도를 할 때 마주하는 막막함과 외로움을 "파도가 거세면 서핑을 타지"라는 긍정적인 태도로 전환하자는 제안이었습니다.

재단은 이제 시드(Seed) 단계 앞에서 더 조밀하고 끈기 있게 촉매 역할을 자처하려 합니다. 시민이 모아준 그 '믿음'을 바탕으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인내 자본이 다음 단계의 투자 기관과 연결될 때, 우리가 꿈꾸는 아름다운 임팩트의 오케스트라는 비로소 완성될 것이라 기대합니다. 

[발제 3] 임팩트스퀘어 도현명 대표 : VC(임팩트 투자)와 VP(벤처 필란트로피)가 만났을 때

잃어버린 LP를 찾아서: 왜 한국의 임팩트 투자는 희소한가?

1부의 마지막 마이크를 잡은 임팩트스퀘어 도현명 대표는 "왜 우리나라에는 임팩트 투자자가 10개 남짓 밖에 없을까?"라는 질문으로 운을 뗐습니다. 세계 13위의 경제 대국인 한국에서 이 숫자는 분명 기형적입니다. 도 대표는 이 희소성의 근본 원인을 '미싱 LP(Missing LP, 자금 공급원의 부재)'와 '도구와 본질의 혼동'에서 찾았습니다.

우리가 흔히 임팩트 투자를 영리 금융의 세련된 변종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그 시작은 비영리 재단이었습니다. 즉,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비영리 조직이 기존의 '그랜트(보조금)' 방식만으로는 한계를 느끼고, 문제를 뿌리 뽑기 위해 찾아낸 '도구’가 바로 임팩트 투자라는 점입니다. 도 대표는 "우리는 투자를 잘하려고 모인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려고 투자를 선택한 것"이라며, 도구(투자)에 매몰되지 말고 본질(해결)에 집중해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켰습니다.

현재 한국 임팩트 생태계의 가장 큰 문제는 자본 공급이 정부 예산에 압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스타트업 지분 투자는 전체 임팩트 자본의 9% 수준에 불과하지만, 우리나라는 정부가 이를 규정화하면서 시장의 100%가 지분 투자에만 쏠려 있습니다.

해외에서는 대학, 연금, 국부펀드, 재단 등 다양한 주체들이 각자의 목적에 맞게 임팩트 투자를 도구로 활용하지만, 한국은 이들의 참여가 전무하다고 볼 수 있는 상황입니다. 특히 정부 예산으로 운용되는 펀드는 수익이 나면 다시 국고로 환입되는 구조라, 생태계 내에 자본이 축적되지 않고 휘발되어 버립니다. "돈은 있지만 생태계 안에서 흐르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도 대표는 임팩트 VC(벤처캐피탈)와 VP(벤처 필란트로피)의 차이를 명확히 하며, '촉매적 자본'의 필요성을 역설했는데요. VC가 임팩트를 중심으로 하되 성과와 수익을 추구하는 '성장'의 파트너라면, VP는 수익보다는 임팩트라는 '방향성'에 집중하며 더 긴 호흡을 견디는 자본입니다.

출처 : SOVAC Salon X 임팩트써밋, 임팩트스퀘어 도현명 발제자료 중 일부

여기서 VP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리스크를 감당해주는 것입니다. 펀드 설계 시 재단이나 기금 같은 VP 자본이 "손실이 나면 우리가 먼저 감당하겠다(선손실 충당)"라고 자처할 때, 비로소 리스크를 두려워하던 거대 민간 자본(주류 자본)이 안심하고 들어올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이것이 바로 이번 행사의 주제인 '자본의 오케스트레이션'이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메커니즘입니다.

"시간이 곧 신뢰입니다. 우리가 어떤 역사를 써왔는지가 결국 그 사람의 신뢰를 담보하죠. 임팩트 투자에서 일관성은 생명과도 같습니다. 투자자와 운용사가 똑같은 방향을 보고 걷고 있다는 '일관성'이 증명될 때 비로소 자본이 움직이며, 그 일관성의 뿌리에는 반드시 확고한 철학이 존재해야 합니다."

민간 자본이 흐르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내부 거버넌스의 보수성 때문입니다. 많은 재단과 기업 이사회는 투자를 고유목적사업이 아닌 위험한 '수익사업'으로 보며 책임을 회피합니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담보하는 신뢰'와 '제도적 변화'가 동시에 필요합니다.

한 번 출자한 LP가 반복해서 출자하게 만드는 '철학적 일관성'을 GP가 증명해야 하고, 동시에 비영리의 투자가 고유목적사업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법적 빗장이 풀려야 합니다. 도 대표는 "임팩트 투자는 단순히 돈의 액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왜 그 돈을 넣는가에 대한 답변을 찾는 과정"이라며, 자본의 성격에 대한 근본적인 전환을 촉구하며 발제를 마쳤습니다.

우리에겐 실패를 경험할 수 있는 더 많은 '운동장'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모두 협력의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막상 실행의 단계에 들어서면 ‘어떻게(How)’라는 질문 앞에서 늘 멈칫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유일한 답은 결국 ‘직접 해봐야 안다’는 현장의 진리뿐입니다. 흔히 성장을 위해 ‘안전한 실패’를 말하곤 하지만, 사실 세상에 완벽히 안전한 실패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제도가 완벽하게 정비되어 리스크가 사라지길 기다리기에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사회적 난제들이 너무나 빠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제도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우리의 담대한 시도가 새로운 제도를 견인하는 ‘실행의 시간’으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결국 자본의 조율(Orchestration)은 정교한 이론이 아니라 치열한 시행착오의 축적을 통해 완성됩니다. 이제는 자본을 어떻게 모을 것인가를 넘어, 누구의 자본이 어떤 리스크를 먼저 감당하며 ‘어떻게 잘 쓸 것인지’를 함께 치열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실패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로부터 배우고, 그 경험을 생태계의 공동 자산으로 쌓아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머리를 맞대고 함께 음을 맞춰가는 조율의 과정 자체가, 언젠가 사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거대 자본의 흐름을 만드는 가장 확실한 지름길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이번 행사가 단순한 '담론의 장'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우리는 내일부터 각자의 자리에서 작은 균열을 내기 시작해야 합니다. 완벽한 설계도를 그리기보다, 일단 악기를 꺼내 서로의 음을 맞춰보는 '조율'의 첫걸음을 떼야 합니다. 혼자서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거대한 파도일지라도, 우리가 서로의 신뢰를 담보로 자본과 지혜를 모은다면 그 파도를 타고 나아가는 서핑은 충분히 가능할 것입니다. 2026년의 봄, 이제는 선언을 넘어 실행이라는 담대한 모험을 함께 시작하길 기대합니다.

이미지 출처: unsplash

SOVAC Salon X 임팩트 써밋 "Capital Orchestration for IMPACT"의 더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 링크에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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